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 '달인'이라는 코너가 있다. 코미디언 김병만이 온갖 희한한 분야의 달인임을 자청하고 나와 웃음을 자아낸다. 사실 달인은커녕 백수건달에 가까운 인물이다. 제자까지 거느리고 있으니 어찌됐건 한가락 하는 것은 틀림없겠지만 매주 등장하는 모습을 보면 '2인조 사기꾼'이나 '덤 앤 더머'에 더 가깝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설정일 뿐이고, 코미디언 김병만은 웃음의 코드를 짚어낼 줄 아는 초보 달인쯤은 된다고 하겠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도 있다. 제품 포장부터 물건 배달 등 일상 속에서 이뤄지는 여러 작업에서 이들이 보여주는 기술은 가히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정도다.
달인(達人)은 '학문이나 기예에 통달하여 남달리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 또는 '널리 사물의 이치에 통달한 사람'을 뜻한다. '1만시간의 법칙'이라는 말도 있다. 하루에 3시간씩 10년간, 즉 1만여시간을 한 분야에 몰두하면 달인이 된다는 말이다.
기자는 의료 시리즈 '메디컬 프런티어'를 위해 의사들을 인터뷰하면서 새삼 달인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프런티어(frontier)는 변방이자 개척지이며, 아직 디뎌보지 못한 땅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시리즈에 소개된 의사 중에는 50대 중반을 넘어선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40대 후반이다. 의과대학 6년를 졸업한 뒤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쳐 전문의를 따면 대개 30대 초반이 된다. 일반 의사로 지내다가 특정 분야에 눈을 뜨게 되고 본격적인 탐구의 길에 나서는 게 대체로 30대 중'후반. 시리즈에 소개된 의사들은 나름대로 달인의 경지에 오른 분야에 최소 10년간 몸 담았다는 뜻이 된다. 물론 이들이 투자한 시간은 하루 3시간이 아니라 10시간도 넘었으리라.
다른 의사들도 다르지 않다. 전문의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하고, 매일 환자를 대하는 시간을 감안하면 몇 만 시간을 노력했다. 그렇다면 단지 시간만이 달인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 된다. '메디컬 프런티어'에 소개된 의사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열정, 사명감, 도전정신 등등을 떠올리겠지만 정답은 엉뚱하게도 '재미'다. 재미의 출발점은 호기심이다. '왜 그럴까?', '왜 그래야만 하지?', '다르게 하면 안 되나?'. 그들은 쓸 데 없는 짓을 한다는 손가락질, 해봐야 소용없다는 조롱, 굳이 사서 고생한다는 비아냥을 감수하고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길을 찾았다. 이유는? 그게 재미있으니까. 제 아무리 천재도 즐기는 사람을 못 당한다고 하지 않는가.
물론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지금에야 가볍게 '재미'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 길은 두렵고 외롭고 혹독했다. 주말과 휴가를 반납하고 병원에서 살아야했고, 행여 치료가 순탄치 않았을 때 멱살을 잡히는 수모도 감수해야 했다. 프런티어 의사들은 한결같이 "가족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어느 날 봤더니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다음 날 봤더니 고3 수험생이더란다.
21세기는 '즐기는 사람의 시대'가 될 것이다. 판에 박힌 직업인은 결코 그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호기심은 상상력을 낳고, 상상력은 새로움과 진보의 모태다. 강요된 변화가 아니라 주도하는 변화, 그 속에서 재미를 찾는 프런티어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사실 세상은 늘 그래왔다. 과거에는 프런티어에 대한 세상의 응답이 수백년 혹은 수십년이 걸렸을 뿐이다. 지금은 즉각 반응이다. 시대를 주도하는 사람은 후대에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당대에 인정받는다. 변방에 발을 내딛는 그 순간, 더 이상 변방이 아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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