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단절의 시대

만약에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고등학생 1=200년 후의 미래로 가서 지구가 괜찮은지 확인하고 싶다.

아저씨=10년만 젊어져서 공부를 다시 하고 싶다.

아가씨=과거, 문명이 발달하기 전의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다.

아주머니=로또 복권의 번호를 미리 알아내서 갑부가 되고 싶다.

고등학생 2=같은 학교의 친구가 1주일 전 자살을 했는데 그 전으로 돌아가서 말리고 싶다.

이상은 딸아이가 다니는 일본어 학원에서 '만약에'라는 제목으로 말하기 수업을 하며 들은 내용이다. 마지막 학생이 발표를 마치자 강의실 안은 빙하기가 도래한 듯 서늘해졌고 딸아이는 몸이 굳어버릴 것 같았다고 했다.

평소에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나 오타쿠(게임이나 에니메이션 등 어느 하나에 중독된)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말이 없었다는 그 아이도 어쩌면 자신의 죽은 친구처럼 누군가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둘러본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가장 먼저 정문의 차단기가 막아선다. 차 앞 유리에 부착된 인식표를 알아 본 후에야 차단기는 길을 내어준다. 지하 주차장에서도 정문에 있던 감시 카메라는 동그랗게 눈을 뜬 채 지켜본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선 자동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여전히 감시 카메라는 돌아가고 출입카드가 필요하다. 정문에서부터 집 현관 앞에 오기까지 최소한 일곱 번 내지 여덟 번을 카메라에 노출되어야 하고 두 번의 카드 인식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관의 비밀번호를 무사히 눌러야 집안에 들어올 수 있다.

소리는 진동이 아닌 마음의 영역이라는데 우리는 기계와의 소통을 꿈꾸면서 마음을 잃어버렸고 기계는 언제나 우리에게 일방통행이다. 이제는 초등학교에조차 전자명찰이 도입된 곳도 있다. 아이의 등하굣길 부모에게 문자로 전달되는 제도이다. 어른들의 염려 안에서 자녀들은 인권을 박탈당했다. 편리를 위한 것이 목적이라지만 어쩌면 우리 스스로 자유를 저당잡혔는지 모른다. 그렇게 아끼는 시간으로 더 많은 일을 하는데도 늘 바쁘다고 허둥댄다. 그러면서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이제는 한 걸음 느려지자. 이미 오래 전에 미하일 엔데가 '모모'에서 걱정했듯이 시간을 훔치는 도둑에게 우리 마음을 도둑맞지 말자.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따뜻한 모모가 되자. 달은 윙크 한번 하는데도 한 달이 걸린다고 어느 시인은 말하지 않았던가.

박월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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