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원태의 시와 함께] 주석 없이 / 유홍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탱자나무 울타리를 돌 때

너는 전반부 없이 이해됐다

너는 주석 없이 이해됐다

내 온몸에 글자 같은 가시가 뻗쳤다

가시나무 울타리를 나는 맨몸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가시 속에 살아도 즐거운 새처럼

경계를 무시하며

1초 만에 너를 모두 이해해버린 나를 이해해 다오

가시와 가시 사이

탱자꽃 필 때

나는 너를 이해하는 데 1초가 걸렸다

 

 ---------

무릇 사랑이란, 단 "1초 만에 너를 모두 이해해버리"는 것이다. 직방(直放)의 사랑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게 바로 사랑의 위력이기도 하거니와, 사랑은 이토록 철저히 직관(直觀)이라는 왕국의 신민(臣民)인 셈이다. 시인에게 사랑이란, '너'를 "전반부 없이 이해"하는 것, "주석 없이"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할 때 그는 마치 "가시나무 울타리를/ 맨몸으로 비집고 들어가"듯, "온몸에 글자 같은 가시가 뻗치는" 듯, 고통스러울 만큼 강렬한 느낌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기꺼이 그러해야 할 것이다. "가시 속에 살아도 즐거운 새처럼/ 경계를 무시하며" 말이다. 탱자꽃은 "가시와 가시 사이"에서 아름다운 별무리처럼 오롯이 돋아난다. 그게 사랑이다. 이해해다오 그대들이여. 보라, 시인은 시에서 사랑이란 말을 단 한 번도 쓰지 않았지만, 그러고도 할 말 다 했지 않는가. 그러니 그대들이여, 사랑에 대해 요모조모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

시인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민의힘 내부에서 장동혁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구경북 지역 의원들은 장 대표를 중심으로 결속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세계, 현대, 롯데 등 유통 3사가 대구경북 지역에 대형 아울렛 매장을 잇따라 개장할 예정으로, 롯데쇼핑의 '타임빌라스 수성점'이 2027년,...
대구 지역 대학들이 정부의 국가장학금 Ⅱ유형 폐지에 따라 등록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으며, 장기간 등록금 동결로 인한 재정 부담이 심각한 상황이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