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원태의 시와 함께] 주석 없이 / 유홍준

탱자나무 울타리를 돌 때

너는 전반부 없이 이해됐다

너는 주석 없이 이해됐다

내 온몸에 글자 같은 가시가 뻗쳤다

가시나무 울타리를 나는 맨몸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가시 속에 살아도 즐거운 새처럼

경계를 무시하며

1초 만에 너를 모두 이해해버린 나를 이해해 다오

가시와 가시 사이

탱자꽃 필 때

나는 너를 이해하는 데 1초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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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사랑이란, 단 "1초 만에 너를 모두 이해해버리"는 것이다. 직방(直放)의 사랑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게 바로 사랑의 위력이기도 하거니와, 사랑은 이토록 철저히 직관(直觀)이라는 왕국의 신민(臣民)인 셈이다. 시인에게 사랑이란, '너'를 "전반부 없이 이해"하는 것, "주석 없이"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할 때 그는 마치 "가시나무 울타리를/ 맨몸으로 비집고 들어가"듯, "온몸에 글자 같은 가시가 뻗치는" 듯, 고통스러울 만큼 강렬한 느낌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기꺼이 그러해야 할 것이다. "가시 속에 살아도 즐거운 새처럼/ 경계를 무시하며" 말이다. 탱자꽃은 "가시와 가시 사이"에서 아름다운 별무리처럼 오롯이 돋아난다. 그게 사랑이다. 이해해다오 그대들이여. 보라, 시인은 시에서 사랑이란 말을 단 한 번도 쓰지 않았지만, 그러고도 할 말 다 했지 않는가. 그러니 그대들이여, 사랑에 대해 요모조모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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