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는 출신 신분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했다. 양반과 노비(奴婢)는 태어나면서 결정됐다. 전체 인구의 30~40%를 노비가 차지했다. 노비는 신분이 세습됐다. 이 때문에 조선 노비 제도는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가혹한 것으로 손꼽히고 있다. 부모의 어느 한쪽이 노비일 경우, 그 자녀는 모두 노비로 파악하는 소위 '종모우종부'(從母又從父) 혹은 '일천즉천'(一賤卽賤)이라는 방식이 조선 노비제였다.
이에 성호 이익과 같은 학자는 저서 '성호사설'에서 "천하 고금에 없는 법"이라며 비판했다. 또 미국 학자 올란도 패터슨 역시 전 세계적으로 발견되는 노예제를 비교 분석하면서 노예가 출생에 의해 그 신분이 세습되는 방식을 일곱 가지 형태로 나누고, 가장 가혹한 것을 부모의 어느 한쪽이 노예이면 그 자식이 모두 노예가 되는 방식을 '중국유형'(中國類型)으로 이름 지었다. 그러나 그는 정작 '중국유형'을 중국보다는 인근 고려나 조선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규칙이 적용된 코리아에서 우리는 동양에서 가장 발달한 노예제를, 그리고 전근대 세계 어디에서보다 가장 발달된 노예제의 하나를 발견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조선조는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노비 자녀들은 노비 신분이 '천형'(天刑)이 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닫힌 사회'였다. 19세기 후반 조선의 신분제가 사라지고 능력과 개인의 노력에 의해 신분이 상승되는 '열린 사회'가 펼쳐졌다. 그리고 20세기 후반 '단일민족' '단군의 자손'이라는 식의 '순혈주의'(純血主義) 사고도 많은 이민족들의 유입과 정착으로 점차 희석되고 있다. 국내 거주 이주 외국인들이 200만 명에 이르면서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다문화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닫힌 사회'의 잔재를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6'2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구미 지역 공천도 한 사례다. 구미 인구는 40만 명에 조금 못 미친다. 이 가운데 80% 정도는 다른 곳에서 태어나 구미에 뿌리를 내린 사람들로 추정된다. 하지만 6월 선거에 구미 지역구에 출마하는 도의원(6명)과 시의원(20명) 후보 공천에서 한나라당은 24명을 구미(선산) 출신으로 공천했다. 인구 구성으로 보면 '열린 도시'이지만 정치에서는 '닫힌 도시'인 것 같다. 구미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있는 시민들에게 구미(선산) 출신이 아니라는 사실이 족쇄가 된다면 구미 정치의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정인열 중부지역본부장 oxe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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