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맛 향토음식의 산업화] (44)약전삼계탕

은은한 한약국물에 빠진 영계…맛·영양 뛰어난 세계인의 음식

큼지막한 뚝배기에 갖가지 보약재료를 한아름 안은 영계는 약전골목에서 한방삼계탕으로 다시 태어난다. 하림에서 생산된 1개월짜리 영계를 재료로 하는 약전삼계탕은 국물이 맑고 시원한 게 특징이다.
큼지막한 뚝배기에 갖가지 보약재료를 한아름 안은 영계는 약전골목에서 한방삼계탕으로 다시 태어난다. 하림에서 생산된 1개월짜리 영계를 재료로 하는 약전삼계탕은 국물이 맑고 시원한 게 특징이다.
약령시 입구에 있는 약령서문. 약전삼계탕은 약령서문을 거쳐 약전골목으로 가다 보면 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약령시 입구에 있는 약령서문. 약전삼계탕은 약령서문을 거쳐 약전골목으로 가다 보면 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대구 약전골목. 즐비한 한약방과 약업사에서는 언제나 한약 달이는 냄새를 골목길로 뿜어낸다. 그래서 그런지 은은한 한약냄새를 헤치며 골목을 거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건강해 보인다. 약전골목에는 시골에서 처음 온 사람들이면 꼭 들러보는 음식점이 있다. 바로 약전한방삼계탕이다. 한여름 삼복지간에는 앉을 자리도 없을 만큼 손님들로 붐빈다. 한약사와 약업사를 찾는 이들이 약전골목에서 진귀한 약재를 구해 가면서 반드시 찾아오는 곳으로 전국에 널리 알려진 명소다.

◆약전골목 명물 약전삼계탕

약전골목에서 한방삼계탕 하면 한약재료도매시장 옆 약전삼계탕이다. 17년째 오직 한방삼계탕 하나만으로 손님을 맞고 있는 약전삼계탕 주인 정봉연(60·여)씨.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대구토박이 특유의 친절함으로 자리를 권한다. 삼복더위 여름 음식이 사계절 언제나 즐겨 먹는 음식이 된 약전삼계탕은 이곳에서 단 2집만 남았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한방삼계탕집 10여 군데가 나름대로 비법을 개발해 성업했으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연속된 조류독감 파동으로 하나 둘씩 간판을 내리고 전업한 때문이다.

"아유 말도 마세요. 조류독감으로 망한 삼계탕집이 어디 대구뿐입니까. 전국이 난리였었는데." 손사래를 치며 말도 꺼내기 싫다는 표정의 정씨는 첫 번째 조류독감 파동 때는 아예 길거리에 나앉다시피 했다고 한다. 하루 종일 한사람도 찾지 않아 아파트를 팔아서 사글세방을 얻어야 할 형편에서 다시 재기할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정씨의 노력이었다. 식당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붙잡고 "한번 맛보고 가라"고 매달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입소문이 나고 손님들이 몰려든 건 식당을 시작한 지 10여년이 지난 7년 전쯤이라고 한다. 전국을 다니며 잘 한다는 소문난 집을 찾아가 먹어 보고, 삼계탕을 사 와서 분석해 보면서 지금의 기본 레시피를 만든 것은 남편 최용수(62)씨다. 지금도 주방장 일을 도맡고 있는 최씨는 원래 고교 교사였다. 아는 사람의 권유로 무심코 세를 얻어 장사를 시작했지만 장사를 익히는데 10여년이 걸렸다고 한다. 10년 동안 고생도 참 많았다는 그는 "무슨 장사를 해도 한자리에서 정성을 다해 10년은 해야 비로소 단골이 생긴다"며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못 된다고 웃었다. 열심히 한 덕분에 3층짜리 옆집 상가건물을 샀다. 모바일 분야 연구원으로 일하던 아들 창은(36)씨가 최근 직장을 접고 부모님의 가업을 이어받고 있다. 창업 이후 17년째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신문을 구독하는 애독자 가족이기도 하다.

◆맛의 비결은 '안 가르쳐 준다'

이집 삼계탕은 국물이 맑은 게 특징이다. 먼저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어 보면 구수하고 시원하다. 약자루에 한방약재를 넣고 속을 넣은 영계를 함께 푹 고아낸 후 적당하게 익은 닭은 건져내고 다시 비법인 '천연재료'들을 넣어 육수를 한번 더 끓이고 걸러내기를 여러번 반복해 만든 까닭이다.

닭비린내가 없어 삼계탕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이집에선 한그릇 뚝딱이다. 갖가지 약재를 넣고 달여 내 삼계탕 한방육수를 만들지만 기름기를 없애는 '천연재료' 비결은 공개하기를 꺼렸다. 최용수씨는 비결을 조금만 가르쳐달라는 말에 빙그레 웃기만 했다.

삼계탕에는 천궁, 당귀, 황기, 계피 등의 한방약재에다 오가피, 인삼, 밤, 대추, 마늘을 추가했다. 약방에 감초라면 삼계탕엔 황기다. 원기를 북돋워 줘 식은 땀을 그치게 하는 황기는 삼계탕 한방약제 중 80%를 차지한다. "황기는 많이 넣을수록 맛이 나아지고 몸에도 좋지요. 다른 약재는 용량을 잘 지켜서 사용해야 하지만 황기는 그렇지 않아요."

보혈제로 피를 맑게 하는 천궁과 진정제로 쓰는 계피, 혈액순환을 도와주는 당귀 등은 각각 5%정도만 넣고 달여낸다. 속으로 넣은 찹쌀은 쌀알이 오돌오돌하고 퍼지지 않아 닭살의 쫄깃함과 어우러져 입안에 짝짝 달라붙을 정도로 입감이 좋다.

뚝배기 삼계탕이 나오기 전에 풋고추와 양파를 곁들여 고소하게 볶아낸 닭똥집을 안주 삼아 전식으로 마시는 인삼주 한잔이 기가 막히다. 삶아서 다시 참기름으로 볶아내기에 냄새가 전혀 없다. 쌉쌀한 인삼주는 입안을 개운하게 하고 식욕을 북돋워 뒤에 나오는 한방삼계탕 맛을 더욱 높여주는 추임새 역할을 한다. 국물이 흥건한 깍두기가 시원하고 고추장에 절인 생마늘 장아찌도 별미. 인삼은 금산인삼을 사용한다.

유명인사들이 줄이어 다녀 갔다. 영화배우 설경구, 농구선수 박찬숙, 가수 남일해 등등 손꼽을 수 없을 정도다. 최병렬 전 국회의원과 대구 국회의원들, 시·도의원 등 정치인들도 다녀가면서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칠성시장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젓갈가게 주인 '정씨 할매'가 바로 친정어머니라고 한다.

◆전국화 프랜차이즈사업 모델

가부좌를 튼 모양으로 속을 채운 1개월짜리 영계가 한마리씩 통마리로 뚝배기에 담겨 나오는 한방삼계탕은 한그릇에 모두 들어 있고 삶아내는 칭기즈칸 요리라는 점에서 한식세계화의 소재로도 가능성을 보여 준다. 속에 마늘, 밤, 찹쌀을 넣고 배를 이쑤시개로 꿰맨 뒤 가마솥에 푹 고아낸 영계는 냉면처럼 국물따로, 익힌 영계따로 포장하면 전국 어디든지 택배도 가능하며 얼마든지 프랜차이즈가 가능하다.

약전골목이라는 이점도 있지만 정씨의 약전삼계탕집은 손님이 많을땐 하루 1천~1천500마리가 나간다. 하루 매상이 최고 1천500만원이나 된다. 요즘에도 하루 평균 200마리는 거뜬하다. 바쁠 땐 10여명의 종업원들이 눈코 뜰새 없이 뛰어 다닌다. 닭고기는 하림에서 삼계탕용 1등품을 공급받는다. 50마리만 팔면 유지가 된다는 치킨집과 비교하면 엄청난 매출이다. 지난 17년간 판 닭이 줄잡아 계산해도 30만 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조류독감이라면 사람들이 아예 삼계탕을 먹으려 들지 않았지만 요즘엔 조류독감이 돌고 뉴스에 나와도 거의 손님이 줄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안정을 찾았다는 얘기다. 한해 쓰는 현풍유과 찹쌀은 이틀에 40㎏씩이니 무려 7t이나 된다. 풋고추, 무, 마늘도 칠성시장에서 모두 구입해 지역 경제 기여도도 적지 않다. 전국의 삼계탕 프랜차이즈 외식사업도 대부분이 이곳 약전한방삼계탕을 보고 사업방향을 잡았다.

약전골목의 독특한 웰빙요소가 향토음식에 접목돼 대도시 도심속에서도 잘 어우러져 제분위기와 제맛을 내는 토속 음식이 약전삼계탕 외에 과연 몇이나 될까? 대구사람들도 무척 좋아하지만 이제 세계인의 음식이 됐다. 특히 일본 NHK에서 세계의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대구 약전한방삼계탕을 방영한 이후 건강 한식을 맛보려는 일본사람들이 특히 좋아하는 대구 특미로 자리를 잡았다. 대구시도 약전삼계탕집을 대구유명 음식점으로 홈페이지에 소개하고 있다. 053)253-2473.

향토음식산업화특별취재팀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 프리랜서 강병두 plmnb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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