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자녀 시대 '골드키즈'모시기…명품파와 실속파

당신은 어느쪽?

비싼 장난감 구입이 부담스러운 실속파 엄마들은 저렴한 비용으로 다양한 장난감을 빌리는 것을 선호한다. 사진은 월성종합사회복지관 내 장난감도서관 모습.
비싼 장난감 구입이 부담스러운 실속파 엄마들은 저렴한 비용으로 다양한 장난감을 빌리는 것을 선호한다. 사진은 월성종합사회복지관 내 장난감도서관 모습.
불황이지만 의류나 장난감 등 키즈산업은 상향 평준화하는 추세이고 명품은 눈부신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사진은 대백프라자의 한 명품키즈 매장.
불황이지만 의류나 장난감 등 키즈산업은 상향 평준화하는 추세이고 명품은 눈부신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사진은 대백프라자의 한 명품키즈 매장.

"요즘 젊은 엄마들 사이에 아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명품으로 사는 게 유행처럼 됐어요. 150만원하는 유명 브랜드 원피스도 불티나게 팔리고요. 자녀 생일파티 비용으로 기본이 100만원, 케이크 20만~30만원, 식대 10만원 등 200만~300만원 정도를 들이는 경우도 많다고 하네요."(이숙영(34·여·대구 달서구 이곡동))

한자녀시대에 골드 키즈(Gold Kids)는 이제 낯선 단어가 아니다. 자녀를 위해서는 아무리 비싸도 선뜻 지갑을 여는 시대다. 불황이지만 의류나 장난감 등 키즈산업은 상향 평준화하는 추세이고 명품은 눈부신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일부 엄마들은 이 같은 분위기를 좇아 아이에게 명품을 본뜬 짝퉁 옷을 입히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실업난과 이혼 가정 증가 등으로 열악한 양육환경에서 생활하는 아이들 또한 늘고 있다.

◆무조건 명품 사준다

사업가 남편을 둔 김모(38·여·대구 수성1가)씨는 네살배기 아들을 위해 한달에 평균 300만원을 쓴다. 교육을 위해 투자하는 비용은 대략 200만원 정도. 한달에 70만원 하는 영어어린이집을 비롯해 미술과 피아노 강습, 창의성 놀이교실인 브레인스쿨, 영어 수업 등 다양한 교육을 받느라 1주일이 정신없이 지나간다. 최근에는 몬테소리와 가배 교재를 400만원어치 구입해 수업을 듣고 있다. 옷은 주로 버버리키즈나 일본의 유명 아동복 브랜드인 미키하우스를 입힌다. 미키하우스의 경우 양말 한 켤레가 2만2천원, 티셔츠와 바지는 각각 20만원을 훌쩍 넘는다. 버버리키즈는 점퍼 가격이 30만원 정도로 성인 브랜드와 값이 거의 같다. 김씨는 "아이에게 뭐든 다 해주고 싶은 게 부모의 심정이다. 아이가 하나이기 때문에 좀 더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해 아쉽다"며 "부유층에 비하면 많이 쓰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이숙영씨는 "요즘 세대는 과거와 달리 부모 덕분에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자랐고 어릴 때부터 소비를 많이 해 명품이나 고가의 상품 구매에 거부감이 없는 것 같다"며 "좀 산다 하면 한달에 300만~400만원 투자한다"고 했다.

이 같은 추세는 백화점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대백프라자의 경우 명품 아동복은 너나 없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티셔츠 20만원, 바지 18만~25만원, 점퍼 30만~70만원을 호가하는 랄프로렌칠드런은 전년 대비 매출이 30% 증가했고 이와 가격대가 비슷한 버버리키즈는 전년에 비해 8% 신장세를 보였다. 대백프라자 박희만 과장은 "키즈매장에 오는 부모들은 대부분 자녀가 한명"이라며 "특별히 키우고 싶고 남들에게 과시하고 싶은 마음에 명품 구매를 주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아백화점 정희영 과장은 "요즘은 부모뿐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고모 등도 아이 선물을 할 때 고급이나 명품을 하는 추세"라고 했다.

◆짝퉁 옷 구입도 불사

서민들 처지에는 아이에게 명품을 사주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요즘 신세대 엄마들은 자신의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뒤처지는 것을 극히 싫어한다. 그럴 때 엄마들은 '편법'을 쓰기도 한다.

세살짜리 딸을 키우는 박모(32·여·대구 달서구 용산동)씨는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간혹 짝퉁 옷을 입힌다. 인터넷 쇼핑을 통해 명품 옷을 그대로 본뜬 짝퉁을 사는 것이다. 박씨는 "형편이 넉넉하든 넉넉하지 않든 아이에게 명품 옷을 입히고 싶은 부모 마음은 마찬가지"라고 했다. 짝퉁 옷은 자세히 보면 천의 재질이나 색감, 라벨 모양 등 명품과 다소 차이가 나지만 얼핏 봐서는 거의 똑같다. 가격은 진짜보다 1/3~1/5 수준이다.

박씨는 "과거처럼 옷 한벌을 형이나 누나가 입고 물려주는 시대가 아닌데다 요즘은 엄마들이 아이들의 코디에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에 옷뿐 아니라 신발, 모자 등 구색을 갖춰 입힌다. 그렇다 보니 가짓수도 늘어 옷값이 만만찮다. 결국 짝퉁 옷을 사서 입힐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녀는 폴로와 미키하우스, 랄프로렌 등 웬만한 명품을 본뜬 짝퉁 옷을 갖고 있다.

이러한 엄마들의 심정을 반영해 인터넷에서는 짝퉁 옷을 전문적으로 판매하거나 카페 등을 통해 공동구매하는 사례가 많다. 한 짝퉁 옷 판매 사이트 운영자는 "주부들의 주문을 받으면 진짜 옷을 중국 공장에 보여주고 짝퉁을 만들어내 주문자들에게 택배로 보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며 "보통 주문하면 15~30일 정도 걸리지만 주문량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고 했다.

실속파 엄마들 사이에 최근 '장난감도서관'도 인기다. 장난감도서관은 사회복지회관에서 저소득층 자녀나 장애아동에게 장난감을 대여해주기 위해 생겨났으나 요즘은 실속파 엄마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김미숙(32·여·대구 동구 각산동)씨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아이의 손을 잡고 인근 장난감도서관을 찾는다. 이 곳에서 김씨는 아이에게 몇 시간 놀도록 하면서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주기적으로 빌린다. 김씨는 "남자아이라 매번 장난감 사달라고 조르는데 요즘 브랜드 장난감은 3, 4만원은 기본이다. 사주면 금세 싫증내 고민했는데 이곳에서는 연회비 2만원만 내면 다양한 장난감을 저렴한 가격에 빌릴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장난감도서관은 3년 전 월성종합사회복지관 내에 생긴 이래 지금은 대구에 3, 4곳 정도가 운영되고 있다.

◆장난감 하나도 없다

6살 현준(가명)이는 2년 전 부모의 이혼으로 거동이 불편한 친할머니(74)와 허름한 단칸방에서 살고 있다. 아빠는 돈을 번다며 서울로 가버렸고 엄마는 재혼한 상태다. 그렇다 보니 현준이는 집에 있으면 항상 심심해한다. 가지고 놀 장난감도 하나 없는데다 책을 살 형편도 되지 않는다. 정부보조금으로 그저 할머니와 먹고 살기에 급급한 형편이다.

한자녀시대를 맞아 전반적으로 아이에게 투자하는 비용이 상승했지만 적잖은 저소득층 가정에서는 장난감 하나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특히 이혼 증가와 실업난 등으로 열악한 양육환경 속에 생활하는 아이들도 줄지 않고 있다. 사회 전반적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아이들의 양육환경도 양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저소득 아동가구 생활실태 및 서비스 욕구조사'를 한 결과, 장난감이 없는 가구가 전체의 55.8%, 아동용 책이 한권도 없는 가구가 29.3%에 달했다. 또 영·유아용 가구가 없는 가구는 78.2%, 자녀용 책상과 의자가 없는 가구도 49.7%나 됐다. 이 조사는 아동(0~12세)이 300명 이상 밀집·거주하는 38개 시·군·구의 저소득(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 계층) 가구 1만 381명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아동을 보살피는 손길도 적었다. 조사 결과 자녀가 하루에 혼자 보내는 시간이 2시간을 넘는 가구가 34.3%(4시간 이상 11.4%)였다. 이 때문에 저소득 가정 부모들은 어려움으로 '방과 후 방치(37.5%)'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문화 활동 부족(28.4%), 성적 부진(10%), 정서적 건강(8.2%), 신체적 건강(4.7%) 순으로 들었다.

또 저소득 가정 부모의 25%는 자녀양육과 관련한 조언이나 정보를 전혀 얻지 못했으며, 72.9%는 양육의 어려움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저소득층 부모의 45.5%는 현재 거주지역이 자녀를 키우기에 좋지 않은 곳이라고 답했다.

대구열린지역아동센터 관계자는 "빈부차가 심해지고 가정 해체가 늘면서 제대로 양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계속 늘고 있다"며 "지난 어린이날 집에만 있었다는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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