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나 다양성 면에서 그야말로 인간 전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 그 광대한 중국이 오랜 역사동안 하나의 중국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작은 이슈 하나에도 사분오열 되는 인간 사회를 생각하면 참으로 불가사의하고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추측컨대, 그 이면에는 수많은 다양성과 이익분치를 조정 관리하는 자가 있을 것이고, 나름의 독특한 방법론이 있을 것이다. 선밍이 저술한 『중국식 영도력 中式領導力』(北京: 企業管理出版社, 2006)을 보면 이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있다. 선밍은 중국 역사에 내재된 이들의 방법론을 중국식 영도력, 지도력, 통치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내용 중에 '중국 사대부계층이 수천년 동안 생존해 온 비책'이라고 소개하는 구절이 있다. "궁할 때는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이 최선이고, 얻었을 때 비로소 천하를 도모한다"(窮則獨善其身 達則兼濟天下)는 내용이다. 이때 궁하다는 것은 물질적으로 가난하다는 말이 아니라 기세가 약하고 시기와 환경이 불리하여 적을 정면으로 대적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어려울수록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여 때를 알고 행동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선거철, 각종 선거에 입후보한 많은 분들이 한번쯤 되새겨야 할 책략이다.
'도(道)와 술(術)의 융합'을 논한 장에서는 '물러남이 곧 나아감'(以退爲進)이라는 문구를 강조하고 있다. 경쟁에 이기려고 아등바등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지도력이 무엇인지를 일러주는 대목이다. 선밍은 지도자에게 있어 '물러남'은 패배나 후퇴가 아니라 일종의 방법론적 수정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물러나지만 목적과 결과가 나아가고 있으면 여전히 나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과정에서 한 두 걸음 물러난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저자는 중국 최대 유제품 회사인 '멍니우'(蒙牛)의 경우를 실례로 소개하고 있다. 멍니우그룹은 1999년 내몽고 지역을 기반으로 창립되었다. 창립자 니우근성(牛根生)은 당시 최대의 유품회사 이리(伊利)의 직원이었는데, 독립하여 멍니우를 설립했다. 창립 초기 멍니우는 기존의 이리나 차오위엔싱파(草原興發)에 비해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기업이었다. 기존 두 기업의 견제도 심했다. 멍니우가 300만위안을 들여 옥외광고판을 만들어 걸었는데 두 기업이 공모해서 40여개의 광고판을 난도질해버렸다. 멍니우를 음해하는 유언비어도 퍼트렸다. 멍니우의 우유 배달차를 전복시키기도 하고 협박도 했다. 그 상황에서 멍니우대표 니우근성은 실력 배양의 중요성을 깨닫고는 반격이 아니라 '이타적' 광고로 대응했다. 멍니우의 아이스크림 포장지에 "민족 공업의 발전을 위해 이리를 배우자"는 문구를 인쇄하여 홍보하기도 하고, "광활한 초원에 이리, 싱파, 멍니우의 유업이 부흥할 것이다"는 내용의 광고판도 세웠다.
표면상 멍니우는 이리나 싱파에 굴복하고 공짜 광고를 해준 것처럼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멍니우는 이리, 싱파와 어깨를 겨누는 기업으로 이미지를 홍보할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두 기업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했다는 측면에서 상당한 정도의 손해가 감소하는 이익을 얻었다.
지금 멍니우는 불과 10년 만에 이리와 싱파를 누르고 중국 최고의 유제품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저자 선밍은 이를 '기다림'(待)의 결과라고 단정 짓는다. 결국 중국식 지도력의 비법은 '때를 기다리는 것'에 귀결된다. 그러나 저자는 마냥 기다려서는 의미가 없다고 꼬집는다. 기다림은 세 가지 방식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어야 한다. 첫째는 가장 효율적인 전진 방식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둘째는 반성하고 관찰하며 상처를 치료하면서 힘을 축척해야 한다. 셋째는 적과 보조를 맞추면서 제압할 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천안함 사태 이후 중국의 소극적인 반응이나 중국이 북한을 감싸 안고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는 이유도 알 것 같다. 바로 이퇴위진(以退爲進) 전략인 것이다.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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