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소통령'(小統領), 이번엔 제대로 뽑아야

판이 돌아가는 모양새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생각도 든다. 국민 세금을 들여 4년마다 한 번씩 이런 짓거리를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하는가 하는 안타까움마저 생긴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니 지방선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대다수 유권자가 재미가 없다며 심드렁해하는 것은 차치하고 그 본연의 의미조차 상실해 가는 지방선거 꼴을 보면서 지방자치(地方自治)의 현주소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1991년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올해로 꼭 20년이 됐다. 사람으로 치면 성년이 된 셈이다. 사회인으로 첫발을 내디뎌야 할 나이가 됐지만 우리의 지방자치 수준은 걸음마도 떼지 못했다. 성숙하지 못한 것은 고사하고 부패, 비리의 썩은 냄새가 코를 찌른다. 지방자치가 그 지방의 발전을 견인하는 주춧돌이 되지 못하고 토착 비리를 키우는 온상(溫床)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뇌물 수수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민종기 충남 당진군수. 위조 여권을 이용한 해외 도피 시도와 고속도로 추격전에 아파트, 별장을 뇌물로 받아 챙겼다는 민 군수의 혐의에 국민은 어안이 벙벙했다. 급기야 이번에는 10억 원이 넘는 고가의 아파트 분양 대금을 건설업자에게 대납시킨 혐의까지 드러났다. 건설업자들을 상대로 먼저 노골적으로 거액의 뇌물을 요구했고, 뇌물을 주지 않을 경우 인'허가 사업을 지연시키는 수법을 썼다는 검찰의 수사 발표는 할 말을 잃게 한다. 자치단체장의 행동이라고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어떤 이들은 자치단체장 비리가 일부에 국한된 현상이라 치부할지 모르지만 부패'비리의 독버섯은 곳곳에 만연돼 있다. 민선 4기 기초단체장 230명 중 47.8%인 110명이 비리와 위법 혐의로 기소됐다. 소수의 비리로 덮어 두기 힘들 정도로 우리의 지방자치는 중병(重病)을 앓고 있는 것이다.

기초단체장들이 부패'비리를 저지를 가능성이 큰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지닌 권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기초단체장은 그 지역에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갖고 있다. 민생에 관한 영향력이 지역 국회의원보다 더 세다는 얘기도 있다.

당진군수가 문제가 됐으니 기초단체장 가운데 군수가 가진 권력의 크기를 따져 보자. 군의 공무원 숫자는 대략 500∼800명, 연간 예산은 국비'도비 보조를 포함해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이나 된다. 군수가 되면 관사와 관용차를 제공받고, 운전기사와 비서가 따라온다. 연봉은 약 7천만∼8천만 원. 대신 업무 추진비로 쓸 수 있는 돈이 1년에 3억 원가량 된다. 이것들은 표피적인 것일 뿐 이제부터가 진짜다. 군수는 각종 사업 인'허가, 예산 편성과 집행, 인사 등에서 전권을 행사한다. 작은 대통령이라는 '소통령'(小統領)이란 말이 나오는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국회의원이 사람의 뼈를 관장하는 정형외과 의사라면, 기초단체장은 신경을 담당하는 신경외과 의사라는 한 공무원의 비유는 매우 정확한 것이다. 인'허가를 둘러싸고 '검은돈'이 오가거나, 공무원이 주민이 아닌 단체장을 위해 줄을 서는 것도 단체장의 막강한 권력 때문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옛말은 기초단체장에게 딱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다.

지방자치의 근본 목적은 주민들이 잘사는 데 있다. 어느 누가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이 돼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 부패'비리를 저지르라고 지방자치를 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다수 국민은 누가 단체장이 되고 의원이 되느냐에만 관심을 쏟을 뿐 어떤 리더십과 도덕성, 능력을 가진 사람이 단체장, 의원이 되느냐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누가 당선되느냐에만 주안점을 두는 언론의 책임도 크다.

기초단체장은 한 회사의 최고경영자(CEO)와 같은 존재다. CEO의 역할에 따라 회사의 앞날이 결정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단체장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지역의 미래가 결정된다. 단체장이 부패하고 비리를 저지른다는 것은 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 그 지역의 앞길을 망치는 것이다. 가정에 배달된 홍보물을 다 읽어보기 어렵다면 최소한 기초단체장 후보자들의 홍보물이라도 꼼꼼하게 읽어보고 한 표를 제대로 행사해야 한다. 이 한 표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대현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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