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병휘의 교열 斷想] 어깨를 드러낸

잘 모르더라도 인정하며 살아야 할 때가 있다. 때로는 그것이 사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알고 있더라도 가끔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덮어 줘야 한다. 그래야 사랑이 자라난다. 들추고, 따지고, 까발리는 곳에는 따뜻한 애정이 자리하기 힘든다.

6'2지방선거를 10여 일 앞두고 후보들이 당선을 위해 상대 깎아내리기에 한창이다. '매니페스토'(구체적인 예산과 추진 일정을 갖춘 선거 공약) 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일단 당선되고 보자는 욕심으로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상대 후보의 잘못을 드러내기에 혈안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혹시 썰물 때만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가 밀물 때가 되면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거대한 산호초 더미가 아닌가 의심했다." "곡식을 깡그리 들어내 그들이 기거하는 강변 나루터 윗목 토막집으로 걸머지고 갔다." "생선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들어내다." 앞서의 문장에 나오는 '드러냈다가' '들어내' '들어내다'에서 '드러내다'와 '들어내다'를 혼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드러내다'는 가려 있거나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다,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널리 밝혀지다라는 뜻의 '드러나다'의 사동사이다. "어깨를 드러낸 옷차림."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다."로 쓰인다. '들어내다'는 물건을 들어서 밖으로 옮기다, 사람을 있는 자리에서 쫓아내다의 뜻을 나타내며 "방에서 이삿짐을 들어내다." "저놈을 당장 여기에서 들어내지 못할까."로 활용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온갖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 가운데 순명하기란 쉽지 않다. 평소 노력과 훈련이 없으면 더욱 어렵다. 가장 큰 순명은 자연에 순응하는 일이다. 살다 보면 가끔 가진 것을 잃게 될 때도 있다. 폭풍에 휩쓸리거나 바람이 쓸어 가기도 한다. 대자연의 진짜 바람도 있지만, 사람이 만든 태풍 같은 사건이 더 많다.

나무는 폭풍이 불면 가지가 찢어지거나 뿌리가 뽑힌다. 그러나 풀들은 바람보다 먼저 눕고 먼저 일어나기에 생명력을 간직한다. 무모하게 맞서지 않고 잠시 바람에 길을 비켜 주는 나름대로의 지혜를 갖고 있다.

세상에는 욕심의 폭풍에 맞서는 이들이 많다. 삶의 우울은 그래서 생겨난다. 탐욕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딸린 식구들의 생계가 달려 있을 때는 멈칫하지 않을 수 없다.

어른이 어린이로 되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어린이의 삶으로는 돌아갈 수 있다. 믿고 맡기는 자세 즉 어머니와 함께 있는 아이처럼 되는 것이다. 그런 아이는 편안하다. 전부를 맡기기 때문이다. 삶의 본질은 단순하다. 단지 살아가면서 우리가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필요 없는 것을 끊고 절제하는 훈련을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교정부장 sbh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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