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원태의 시와 함께] 흰 발/박미영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고단한 몸을 끌고 당신을 건넜습니다 당신은 황폐토록 방치된 곤고한 골고다 언덕, 초근목피 또는 난방용 장작처럼 당신의 헐벗은 잔가지 내 발등 찔렀지만, 나는 당신을 건너갔습니다, 아아, 매정한 사랑, 나는 모질게도 당신을 건너고, 곤고한 골고다도 지나, 죽고 싶도록 고단한 몸을 이끌고 당신을 건넜습니다,

드디어 왔는가, 당신을 건너자 내 등에 대고 비로소 당신 말했지요, 당신을 건넌 내 몸이 빠져나간 그 자리에 대고, 무정한 사람, 당신이 말입니다, 아아, 보이지도 않는, 무심히 내 귓등 지나는 소리에, 나는, 진흙투성이 내 발이 부끄러워, 물가로 갔습니다, 지푸라기, 흙먼지, 모래알이 묻은 내 발이 부끄러워 물가로 갔습니다, 그러자,

물 아래, 잔물결 치는 그 물 아래, 뽀얗고, 하얗게, 내 발 씻겨졌습니다, 아아, 옛날, 아주 먼 옛날, 당신 발등에 제가 향유를 부었을 때처럼, 드디어, 부정한 내 발, 뽀얗고, 하얗게, 맑아졌습니다,

'당신'을 숲이거나 강이라는 자연물로 봐도 좋지만, 삶 그 자체라고 봐도 좋겠다. 삶이라는 과정 말이다. "고단한 몸을 끌고" 늙음을 지나 죽음으로 건너가는 게 삶 아닌가. "황폐토록 방치된 곤고한 골고다 언덕" 같거나, "초근목피 또는 난방용 장작처럼/ 헐벗은 잔가지"에 발등이 찔리며 가야 하는 게 삶이다. 우리가 고단한 몸을 이끌고, 죽음이라는 강을 건너 이윽고 피안(彼岸)에 가 닿는다면, 아마도 "드디어 왔는가."라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게 될 터이다. 그 말씀은 보이지도 않으며, 무정한 듯, 무심한 듯, 지나는 소리 같은 것이지만, "내 몸이 빠져나간 그 자리"에 전해진 음성, 즉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나오는 소리 같은 것이어서, 우리는 "지푸라기, 흙먼지, 모래알이 묻은" 저의 발이, 진흙투성이 상처가, 부끄러워 물가로 가게 된다. 그 오래 전 "당신 발등에 향유를 부었을 때처럼", '발 씻김'의 정화(淨化)를 통해 우리의 영혼은 다시 "뽀얗고, 하얗게," 맑아질 게다. 이러한 전 도정(道程)에는 마침표가 없다. 다만, 쉼표만 있을 뿐.

시인

최신 기사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공익신고자의 신원을 공개하고 비방한 것에 대해 공익신고자 보호법 위반 가능성을 제기하며 ...
대구시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1천억원 규모의 대구로페이 발급과 5천억원 규모의 중소기업 금융지원을 포함한 민생경제 활성화 방안을 추진하며, ...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변호사 업무를 재개한다고 발표하며, 별도의 사무실 없이 주거지를 사무소로 등록하고 상담 업무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