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정부 지원 연구비가 눈먼 돈 안 된다

정부에서 지원받는 연구비를 횡령하는 고질병이 좀체 고쳐지지 않고 있다. 지식경제부 등이 위탁한 연구과제를 수행하면서 받은 정부 보조금을 회사운영비나 개인 채무 변제 등에 빼돌린 11개 업체가 무더기로 검찰에 적발됐다. 이 중 한 업체는 정부 지원금 40억 원 중 20억 원을 회사 운영비로 전용했으며 나머지 업체도 1억 2천만~9억 7천만 원까지 모두 46억 원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부정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3~2008년 유용'횡령으로 환수됐거나 환수 예정인 정부 지원 연구비는 93건(23건 조사 중)에 930억 원에 달한다. 유용 수법은 물품을 구매하지 않고 영수증 처리를 하거나 구매 금액을 부풀려 장부를 조작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수법이 워낙 교묘해 드러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유용'횡령 액수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연구비가 엉뚱한 데로 새고 있는 이유는 연구 성과와 연구비 집행 실태에 대한 관리'감독 체계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검찰은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금 규모가 연간 13조 5천억 원이나 되지만 이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감독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정부 연구과제 수행업체로 선정되면 매년 정기적으로 연구 상황을 점검받아야 하지만 전문가 부족으로 형식적인 평가만 이뤄져 왔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연구과제 업체 선정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연구비를 유용'횡령할 경우 최고 10배를 물어내도록 관련 법규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나 문제의 핵심은 이것이 아니다. 창의성과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되 연구비 누수가 없도록 관리 및 평가 체계를 재정비하는 일이 급선무다. 기업이 연구보다는 연구비 잿밥에만 눈독을 들여서는 나라의 사활을 건 기술경쟁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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