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도자기 가게와 옹기 가게

윗동네 옹기 가게 주인과 아랫동네 도자기 가게 주인이 시비가 붙었다 치자. 옹기 장수가 먼저 돌을 던졌다. 10개쯤. 맞받아 도자기 장수가 더 큰 돌을 던졌다. 이번엔 20개쯤. 그렇다면 누가 이겼을까. 던진 돌멩이 숫자나 크기로 보면 옹기 가게의 옹기들이 더 많이 깨졌을 거니까 도자기 장수가 이겼을 법하다. 그러나 찬찬히 셈을 해보면 도자기 장수의 참패다. 도자기 장수는 도자기 한 개만 깨져도 수십, 수백만 원 손해를 보지만 옹기 장수는 다 깨져봤자 싸구려 옹기 값 정도밖에 손해날 게 없다.

천안함 사건 어뢰 증거 노출 이후 유엔과 서방국들의 북한 응징론이 쏠리는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도 응징을 언급했다. 정말 응징을 한다면 남북 어느 쪽이 손해일까? 그리고 과연 무릎 꿇릴 만큼 북한을 '응징'할 실효적 묘수를 갖고 있기는 한가?

응징, 말은 쉽지만 막연히 '한 방 때리면 된다'는 식의 대답으로는 해답이 안 나온다.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말은 했지만 북한이 '용서 못 하면 당신이 뭘 어쩔 거냐'고 도발해도 솔직히 뾰족한 수가 없다. 가장 효과 빠르고 실질적인 응징으로는 이라크전쟁처럼 첨단 병기로 쓸어버려서 징벌하는 방식이 있겠지만 불행히도 우리에게는 그게 바로 옹기와 도자기 가게 싸움이 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미국의 요격기들이 평양과 지하 요새 등을 두드리면 북한은 장사포를 쏘고 미사일을 날리고 10만 특수부대가 후방을 두드릴 것이다. 북한은 평양 시내와 주석궁(宮) 벙커를 빼면 북한 전역이 초토화돼 봤자다. 제대로 된 공장이 있나, 건축물이 있나. 아쉬울 만한 거라곤 없다. 옥수수도 제대로 못 자라는 맨땅에 폭약 먼지만 날 뿐이다. 반대로 남한 쪽은 장사포 몇만 발만 날아와도 서울의 거의 절반이 그들 말대로 '불바다'가 된다. 첨단공장, 중화학 정유시설, 주거환경 가스'통신'교통망도 마비된다. 그야말로 옹기 몇 개 깨준 대가로 고려청자가 깨지는 게임이 되는 것이다.

60년 전 6'25전쟁 때야 양쪽 다 옹기 가게 수준이었으니 피장파장이었지만 지금은 '응징'의 수단이 '전쟁'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와 한계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결국 천안함 같은 피격 사건이 계속 터져 나온다 해도 우리가 내세울 건 주적(主敵) 개념 부활, 제주해협 봉쇄, 워치콘 단계 상향 등이 고작일 수밖에 없다. 던질 수 있는 돌이 수십 배 더 많고 커도 이겨봤자 밑지는 장사가 된다. '경제 제재' 카드를 꺼내 들지만 북한 뒤엔 중국의 쌀가마가 있다. 과연 유엔 안보리 이사국인 중국이 맹방(盟邦)인 북한을 굶어 죽게 내버릴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이 핑계 저 핑계 나쁜 친구인 줄 알고도 눈감아 주게 돼 있다.

유엔결의란 것도 종이호랑이의 하품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날 북한에 대한 유엔 인권위원회의 결의문이나 유엔총회 결의안을 돌아보면 이번 천안함 사건에서 '용서 못 한다'느니 응징, 제재 같은 압박과 엄포가 북한 귀에는 봄바람에 스치는 경 읽기라는 걸 알 수 있다. 제59차, 60차 유엔총회 등에서 결의된 대북한 제재만 해도 그렇다. '…우려를 표명하며' '…요청한다' '…촉구한다' '…할 것을 희망하며'가 전부다. 딱 부러지는 제재 용어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물러빠진 UN 결의안에 이력이 난 북한으로서는 미국 여성 장관의 '용서 못 한다'는 엄포쯤 코웃음 거리밖에 안 여기게 되는 것이다. '괴뢰패당이 보복으로 나올 경우 전쟁 국면으로 간주하고 무자비한 징벌로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큰소리치는 게 다 그런 이유다.

괴팍한 애물단지(북 정권)를 동족으로 둔 우리로서는 저쪽에서 아무리 돌 던지고 욕질해도 맞돌질도 못한 채 '또 그러면 혼낼 거야'라며 속만 끓이고 있어야 할 처지다. 일부 국민정서 속엔 이참에 이판사판 밀어 버리자는 격정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후의 선이 있다. 도자기 깨는 전쟁만은 결코 안 된다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대북한 딜레마요, 이 대통령의 대응 수위의 절제와 한계가 이해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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