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인간생태보고서/ 한나 홈스 지음/ 박종성 옮김/웅진 지식하우스 펴냄

동물인 인간에 대한 적나라한 자기 소개서

만약 어떤 우주인이 다른 우주인에게 인류를 소개한다면 이 정도가 아닐까?

'뒷발 두 개를 사용하고, 자유로운 앞발로 다른 일을 수행한다. 성별 차이가 뚜렷하고, 성체의 몸길이는 평균 150~170cm 정도로, 대개 수컷이 암컷보다 크다. 피부와 털가죽을 다듬고 가꾸는 일에 유달리 관심이 많다. 적도에서 북극까지 광대한 지역에 걸쳐 사는데, 어떤 장소에 갖다놔도 주눅 들지 않는다. 또 불을 사용하는 덕에 활동에 구애를 적게 받는다. 책상 다리만 빼고 다 먹는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잡식성이며, 약 3만 가지에 이르는 식물과 벌레, 갑각류, 파충류, 양서류, 포유류 등을 먹는다. 동물들이 대체로 굶어서 죽는데 반해 인간은 많이 먹어서 죽는 경우가 있다. 이는 자연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경우다. 대다수 인간이 일처일부제를 유지하지만, 호시탐탐 다른 상대와 추가적인 짝짓기 기회를 엿보는 이중 짝짓기 전략을 종종 실행한다. 번식 이외의 목적으로 짝을 찾는다는 점은 인간의 도드라지는 특징이다.'

포유동물은 약 5%만 부부관계를 형성한다. 그것도 유효기간은 약 1년, 즉 한배의 새끼를 임신하고 출산할 때까지 유효하다. 인간은 양육기간이 길기 때문에 부부관계를 오래 유지해야 하고 바람을 피울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동물들이 바람을 적게 피우는 것은 금방 만나고 헤어지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번식 목적 이외에 성교를 하는 대표적인 포유류는 보노보다. 보노보는 다른 침팬지에 비해 다리가 길고, 어깨와 가슴 폭이 좁으며, 머리털이 길고 양쪽으로 갈라진다)

'인간 생태보고서'는 동물인 인간에 대한 유쾌하고도 적나라한 자기소개서라고 할 만하다. 텃세 부리기, 약탈하기, 번식하기 등 인간의 모든 행동은 자연 상태의 동물적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때때로 '짐승보다 더 짐승 같은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예컨대 인간은 결코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이 먹어서 죽음에 이르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불명예도 이런 습성에서 기인한다.

이 책은 인간이 별개의 동물이라는 인식에서 탈피, 인간 역시 동물의 한 종이라는 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인간'이라는 칭호 뒤에 감춰진 탈(脫)인간적인 행동양식을 현미경처럼 세밀하게 탐색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은이가 인간의 동물적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책은 그토록 동물적인 양식으로 살아가는 인간이 어떻게 동물적이지 않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옷, 건축물, 축산 등은 동물의 생활 방식과 다른 부분이다. 특히 자신의 본능과 싸우기도 하고 싸워서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는 인간뿐이다.

인간을 동물학적으로 분석하고자 하는 노력은 1967년 데즈먼드 모리스의 '털 없는 원숭이'가 출간되면서부터다. 이 책 '인간 생태보고서' 역시 고민의 출발은 거기서 시작됐다. 다만 인간의 행태를 동물학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하는 차원을 넘어, 인간이 자연 세계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실마리를 제시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지은이 한나 홈스는 자연사와 과학사 전문 작가로 모든 것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먼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먼지'로 아벤티스(과학서적)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도시에 사는 다양한 생명들의 이야기를 파노라마처럼 펼쳐낸 '풀 위의 생명들'로 2005년 아마존 편집자가 뽑은 올해의 논픽션에 선정되기도 했다.

559쪽, 1만8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