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고통은 전진을 가능하게 한다

예술가들에게 삶의 고통은 명작을 잉태하는 자양분이다. 대구의 많은 미술 작가들이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창작 활동에 힘쓰고 있다. 음악, 연극 등 다른 분야 예술가들도 마찬가지다. 경제적으로 안정돼 있는 작가들도 정신적 고뇌라든지 자신을 둘러싼 외부의 고통스런 환경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고통을 응시하고 치열한 사색을 거쳐 작품을 토해 놓는 것이다. 고통뿐만 아니라 삶의 환희도 예술의 밑거름이 된다. 그러나 그 환희조차 고통 뒤에 찾아왔거나 고통 속에서 갈망하기 때문에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0년 5월,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행복하게 사는 이들도 적지 않겠지만 고통 속에서 사는 이들이 많다. 살림살이 좀 나아졌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걸 질문이라고 하느냐는 듯 씁쓸하게 웃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가 나아진다고는 하는데 몸으로 느끼는 살림살이는 그렇지 못하다. 무한경쟁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하에서 잘나가는 일부 대기업들과 중소기업들, 그 종사원들은 성장의 혜택을 누리겠지만 많은 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고용 없는 성장으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고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비정규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어느 선배 세대 못지않게 많이 공부하고 실력을 갖춘 오늘의 20대들은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뚫기 위해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고 상당수 젊은이들은 불투명한 미래를 불안하게 바라보며 '88만원 세대'의 서글픈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제는 자리를 잡아간다고 느꼈던 민주주의가 어느 순간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도 들린다. 공영 방송이라는 KBS가 정권 홍보 논란에 휩싸이고 정부에 비판적인 집회나 사람들에 대해 제어 기제가 작동하고 있다. 무시 못할 반대 여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4대강 사업 등을 밀어붙이는 행태에서 많은 사람이 권위주의적 냄새를 맡고 있다.

천안함 침몰에 대해 정부가 북한의 소행임을 확인하면서 국민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대응책을 지지하는 여론도 강하지만 현 정부의 대결적 북한 정책이 과거의 냉전적 구도로 회귀하는 데 대한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다.

이러한 삶의 고통과 불안이 줄어들지 않는 상황 속에서 6'2지방선거가 눈앞에 다가왔다. 여당 후보들은 거창한 개발과 발전을 이야기하면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고 야당 후보들은 정부 여당의 정책에 대한 반대와 대안을 내세우면서 심판을 호소하고 있다. 지역별로 여야에 대한 지지가 갈리고 현상고착적인 측면이 여전한 가운데 변화의 기운이 꿈틀거리는 양상도 나타난다. 그러나 선거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거론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 여당은 비판적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가던 길을 계속 가려 하고 있고, 야당은 이를 넘어서는 리더십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 반대편에서 안주하려는 인상을 준다.

예술가들이 고통 끝에 예술적 성취도가 높은 작품을 내놓듯이 우리네 삶도 힘겨움과 불안 끝에 전진의 발걸음을 떼리라는 기대를 믿고 싶다.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일자리를 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현재를 열심히 살면서 즐기고, 미래에 대해 희망을 얘기하면서 웃는 시기가 다가오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좀 더 변화해야 한다. 정치적 갈등을 성숙한 단계의 논쟁으로 끌어올리고 중산층이 줄어드는 현 경제 시스템을 재점검,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펴지도록 해야 한다. 민주주의 후퇴 논란이 나오지 않도록 좀 더 여유있고 포용력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우파-좌파 논쟁이 나오는데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극단적인 시각은 곤란하며 보수와 진보의 이념을 제대로 재정립, 정당한 게임의 규칙 안에서 정책으로 경쟁하고 갈등을 조정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정치 세력 내부에서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주권자인 국민이 나서야 변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이며 그러한 변화만이 균형있는 전진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김지석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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