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바람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투 중 하나로 우리에게 알려진 적벽대전의 백미는 제갈공명의 남동풍이다. 막강한 조조의 군사에 맞선 강동의 새끼 호랑이 손권과 아직은 변변치 못한 유비의 연합군이 남동풍의 힘으로 승리하는 장면은 소설 속 이야기를 정사로 혼동하게 할 만치 생생하게 남아있다. 소설 속에는 상대를 속이고 이간질시키는 한편 스스로 상처를 내는 고육지계까지 등장한다. 계략과 예상 못 한 바람이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으로 묘사했다.

제갈공명이 불러온 남동풍을 놓고 중국 남방 지역의 동지 부근에 나타나는 특유의 현상이라고도 하지만 기후 변화의 예측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쉬운 일이 아니다. 바람의 종류가 많고 이름이 다양한 까닭도 아마 이 때문인지 모른다. 동서남북을 따라 샛바람 하늬바람 마파람 높바람으로 나뉘고 앞뒤 방향과 세기에 따라 꽁지바람 왜바람 명지바람 고추바람으로 부른다. 비는 안 오는데 부는 강바람이 있는가 하면 모낼 무렵 불어와 흉년을 예고한다는 피죽바람까지 있다.

다시 선거철이다. 우리 정치가 불안정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탓인지 결과와 관계없이 선거와 바람은 뗄 수 없는 관계라고들 한다. 선거는 바람이라고 하는 이도 있다. 바람은 변화를 찾게도 하고 변화를 거부하게도 한다. 관심 없던 일을 매력적으로 보이게도 한다. 그래서 정당과 후보들은 저마다 유리한 바람을 기대한다. 그 덕에 북풍 세풍 안풍 노풍 등도 바람의 종류에 이름을 올렸다.

북풍과 노풍이 회자된다. 후보들은 상대에게 유리한 바람은 욕하지만 자기네 뒤에서 불어주는 바람은 여기저기 전해지기를 원한다. 바람이 유권자의 마음을 흔들어 주기를 바란다. 어느 광역단체장 후보는 행복풍을 선사하겠다고 하고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른바 박풍도 어김없이 불고 있다.

원로들은 바람 선거의 잘못을 지적한다. 선거 때면 등장하는 유령의 바람이 선거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도 한다. 대신 지방선거는 정당보다는 인물을 보고 뽑아야 한다는 원론을 강조한다. 정권 대결의 장이 아니라 생활정치의 무대가 돼야 한다는 충고다. 북풍 노풍만이 아니라 정당 보고 기호 보고 무작정 투표하는 것도 바람선거가 아닐까.

서영관 논설실장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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