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람과 세월]프랑스출신 그림동화작가 에르베 튈레씨

"한옥 아름다움 흠뻑 빠졌어요"

프랑스 출신의 그림 동화작가 에르베 튈레(52)씨가 12일 개막한 서울 국제도서전 참석차 방한, 2주간 한국에 머물렀다. 이 기간 동안 경북 안동의 한옥에서 하룻밤을 묵고 대구에 도착한 튈레씨는 "한국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졌다"며 '최고!'를 연발했다. 지난해에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튈레씨는 "그때는 일정이 바빠 서울에만 머물러 아쉬웠는데, 이번에 지방 여러 곳을 다녀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에르베 튈레의 그림 동화책은 읽는 동화, 혹은 듣는 동화가 아니라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동화책'이다. 책을 갖고 논다면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의 동화책을 펴면 '갖고 논다'는 말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말하자면 눈으로 읽기보다는 만지고, 흔들고, 누르고, 불고, 당기고, 돌리며 노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사물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은 그의 책을 잡자마자 흠뻑 빠져버린다. 이야기가 있는 장난감인 셈이다.

그의 책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다양한 그림과 간단한 설명이 나오고, 그 설명에 따르면 되는 방식이다. 설명에 따라 책을 한쪽으로 기울이면 그림이 기울고, 후 불면 그림이 날아간다.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처럼 손가락으로 그림을 키울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다. 책을 마구 흔들어서 그림을 뒤섞어 버릴 수도 있다. 구멍이 뚫린 비행기 그림에 손가락을 넣을 수도 있고 눈을 갖다 댈 수도 있다. 어린 시절 손가락 그림자를 이용해 토끼와 늑대놀이를 했던 것처럼 한편의 흑백 무성영화를 관람할 수도 있다. 무성영화를 감상하는 데 필요한 것은 어둠과 플래시, 튈레의 책 한권이다. '우연놀이'라는 책의 책장을 한장씩 넘기면 작가도 예견하지 못했던 우연한 그림들이 나타난다. 그렇게 나타나는 그림은 보는 사람에 따라 제각각 해석도 달라진다.

"내 책은 아이나 어른 모두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른보다 아이들이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낼 줄 압니다."

그의 책은 어떤 정해진 결말이 없다. 읽는 사람, 그러니까 그의 동화책을 갖고 노는 사람에 따라 이야기는 얼마든지 달라진다. 그래서 통념을 기준으로 이해하려는 어른들보다 어떤 틀에도 갇히지 않은 아이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스스로 창조해낸다.

"아이들은 강가의 조약돌 몇개로 몇 시간 동안 갖가지 재미있는 놀이를 만들 줄 압니다. 조약돌 몇개만 가져도 지겨운 줄 모르지요. 하지만 어른들은 아주 짧은 시간 잠시 감탄할 수는 있어도 금방 지겨워하지요. 세상을 살아오면서 상상력이 그만큼 위축돼버렸기 때문입니다."

그의 그림책은 무엇을 가르치거나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의 책에는 글자가 무척 적은데, 얼마 안 되는 글자 역시 '간단한 사용 설명서'의 역할에 머물 뿐이다. 책에서 이야기를 찾아내고 만드는 것은 독자의 몫인 셈이다.

그는 프랑스의 어린이 교육, 특히 유아 교육은 첫째도 감성, 둘째도 감성이라고 했다. 유치원 전체 수업의 절반 이상이 미술과 연관된 수업인데, 이를 통해 상상력과 표현력을 키운다는 것이다.

"어린이 책은 지식을 전달하기보다 능동적으로 갖고 놀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목적을 갖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즐겁게 노는 과정에서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일단 감동을 받고 스스로 즐기기 시작하면 그 뒤의 학습 과정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집니다."

그는 전 세계를 다니며 아이들과 그림책을 함께 만든다. 말이 통하지 않지만 문제될 것은 없다. 어른들은 언어가 아니면 의사소통이 어렵지만 아이들은 눈빛과 마음으로 의사전달이 금방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스스로 즐기고 스스로 배우는 게 많다고 했다. 자신의 상상력보다 아이들의 상상력이 언제나 더 분방하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많이 생각하고, 많이 보고, 많이 여행한다고 했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는 "찾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다. 모든 예술과 작품은 궁극적으로 발견하는 것이지만 찾아 나선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다"며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을 강조했다.

그는 "내가 만약 나와 같은 동화작가의 책을 어린 시절 만났더라면, 나는 정말 달라졌을 것이다. 현대 사회는 양떼몰이식으로 키워낸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나의 동화책이 아이들을 창의적인 존재로, 창작을 즐거워하는 존재로 변화시키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에르베 튈레는 1958년생으로 디자인을 공부했고, 광고회사에서 아트 디렉터로 10여년 일했다. 1990년대부터 엘르, 르 몽드, 리베라시옹 등 유명 잡지에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해왔다. 1994년 처음 어린이 책을 출간했는데, 첫째 아들을 낳고 아들에게 보여줄 동화책을 찾아다녔지만 마땅한 작품을 찾지 못해 직접 만들어서 보여주겠다고 마음먹었던 게 시작이었다. 지금까지 60여권의 그림 동화책을 출간했다.

창의성과 감성을 키워준다는 평가를 받아 1999년 볼로냐 아동도서전에서 라가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성공한 콘셉트가 많지만, 한권이 성공했다고 같은 콘셉트로 책을 만들지는 않는다고 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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