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방아다리에 꼴을 베러 나갔다가 꼴은 못 베고 손가락만 베어 선혈이 뚝뚝 듣는 왼손 검지손가락을 콩잎으로 감싸쥐고 뛰어오는데 아버지처럼 젊은 들이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다가서며 말했다. "괜찮다 아가 우지 마라! 괜찮다 아가 우지 마라!" 그 뒤로 나는 들에서 제일 훌륭한 풀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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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손가락을 베어 본 적이 있습니다. "선혈이 뚝뚝 듣는" 손가락을 보노라면 제풀에 먼저 하얗게 질리곤 했지요. 아픔보다도 공포가 먼저였던 듯합니다. 그 후, 삶이란 게 대저 상처 입고 아물기를 반복하는 과정 그 자체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요. 격심한 상처와 고통은 존재를 한없이 가라앉게 하지만, 오히려 그 맨 밑바닥에서, 역설적으로 삶에의 근원적인 힘을 또 얻곤 했던 거 같습니다.
상처에 웅크린 그대에게, "아버지처럼 젊은 들"의 "우렁우렁한 목소리" 한 마디 전합니다. "괜찮다 아가 우지 마라! 괜찮다 아가 우지 마라!" 하고 말입니다. 고통 중의 그대도 어느새 "들에서 제일 훌륭한 풀꾼이 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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