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벽녘 잠옷 바람에 옥상으로 대피…마을전체가 진흙탕

물에 잠긴 노곡동 르포…차량 96대 파손, 흙더미 주택 한숨

대구에 112㎜의 많은 비가 내린 17일 오전 북구 노곡동 일대 금호강변 침수지역의 차량들이 물 위에 둥둥 떠있다. 독자 허현덕(36) 씨 제공
대구에 112㎜의 많은 비가 내린 17일 오전 북구 노곡동 일대 금호강변 침수지역의 차량들이 물 위에 둥둥 떠있다. 독자 허현덕(36) 씨 제공

17일 대구시 북구 노곡동 금호강 주변 마을은 밤 사이 내린 비로 진흙탕밭이 되다시피했다. 아스팔트 길은 흙탕물로 가득했고 주민들은 건물 지하와 주택에서 물을 퍼내기에 바빴다. 이날 오전 4시 30분쯤 쏟아진 집중 호우로 노곡동 배수펌프장에서부터 주택가쪽 200여m까지 주변 일대가 완전히 침수돼 주택 44채와 차량 96대가 파손되거나 물에 잠겼다. 마을에 주차된 차량은 대부분 침수돼 창문이 파손되거나 흙과 찌꺼기로 가득 찼다.

주민 전선채(33) 씨는 "아침에 일어나 보니 차 지붕만 겨우 보일 정도로 물이 가득했다"며 망가진 차량을 바라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주민들은 이날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물에 잠겼던 집안 가재도구와 전자제품 등을 바깥에 내놓고 말리면서 집안 구석구석을 씻어내고 닦았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흙더미가 계속 쏟아진다"며 "가재도구와 책 등 세간들이 물에 잠겨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망연자실했다.

노곡동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는 300여m의 도로 양옆이 저지대인 탓에 마을이 대부분 침수됐고 주민들은 가재도구를 골목길로 끄집어내 물로 씻고 임시로 친 천막 등에서 옷가지를 말렸다.

집앞 곳곳엔 쓰레기를 담은 마대자루가 더미를 이뤘고 물에 잠겼던 승용차들은 운전석 주변에 흙탕물 자국이 뚜렷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배수펌프장 맞은편 주택가였다. 침대나 전자제품 등 물에 잠긴 살림도구들이 집 앞에 산더미처럼 쌓였다.

식당을 운영하는 이시호(57) 씨는 "잠을 자다 새벽녘에 이상한 낌새가 들어 일어나보니 물이 골목길로 밀려들면서 조금씩 차오르고 있었다"며 "한 시간 만에 무릎까지 물이 차 들어왔지만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이 씨 가게는 침수 지역 끝자락에 위치해 있었지만 식당의 모든 전자제품이 침수 피해를 입어 사용할 수 없게 됐다.

그 옆의 한 주민은 "새벽녘에 물 흐르는 소리를 듣고 112와 119에 급히 신고를 한 뒤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물이 차 현관문이 열리지 않는 바람에 창문을 깨고 집 밖으로 나와야 했다"며 "담 위에 올라가 있다 이웃 주민의 도움으로 간신히 물이 차지 않은 곳으로 빠져나와 보니 이곳저곳에서 주민들이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한 채 옥상에 올라가 떨고 있었다"고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대구기상대에 따르면 16일 자정부터 17일 오전 9시까지 대구 109.5㎜를 비롯해 고령 189.5㎜, 달성 102.0㎜, 성주 95.5㎜, 칠곡 91.5㎜ 등 집중호우가 내렸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노경석 인턴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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