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마니아 김문암(56·경산시 용성면) 씨는 매주 토·일요일이면 등산배낭을 메고 집을 나선다. 산 이름은 있어도 표지석이 없는 전국 오지산 정상에 표지목을 달아주기 위해서다.
"명산을 제외한 전국 오지산은 2천여 개 있는데 산 정상에 표지석을 설치하지 않은 오지산이 1천500여 개나 돼요. 표지석이 없으면 등산객이 길을 못 찾아 조난당하기 쉬워요."
15년 동안 전국 오지산에 표지목을 달고 있는 김 씨. 벌써 이름표를 달아준 오지산만도 700여 곳에 이른다. 그가 표지목 달아주기를 하게 된 것은 초보 등산객들에게 망망대해의 등대처럼 길안내 역할을 하도록 해주기 위한 것.
김 씨는 산을 좋아하는 대구의 산꾼 3명과 함께 산행하기 일주일전에 회의를 거쳐 표지석이 없는 오지산 2, 3곳을 정한 뒤 표지목을 제작한다. 표지목은 육송으로 가로 15㎝, 세로 60㎝ 크기로 만든다. 그가 직접 글씨를 쓰고 칼로 새긴 뒤 페인트칠까지 하려면 2, 3일은 걸린다.
고등학교때부터 산을 좋아해 자주 산을 올랐다는 그는 32년간 육군·공군부대에 복무하고 3년 전에 명예전역했다.
"군 생활동안 '산바람'이 들었는지 틈만나면 등산을 했어요. 그런데 이정표 역할을 하는 표지석이 없어 산을 헤맨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어요." 그는 그 이후부터 산 이름표를 달아줘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종이에 비닐 코팅을 해서 이름표를 붙이기 시작했죠. 비닐 코팅 이름표만도 100여 곳 오지산 정상에 달았죠. 그런데 5, 6개월도 못가 너덜너덜 떨어지고 해서 수명이 오래가는 표지목으로 바꿨달게 됐죠."
그는 대구경북을 비롯한 주변 산만도 벌써 100여 곳에 표지목을 달아주었다. 대구 공산·왕산·산마산에서부터 성주 영취산·상주 백원산·합천 인덕산·거창 고비골 앞산 등이 대표적이다.
올봄에는 전남 곡성 일대 검장산, 대명산, 차일봉, 작산을 하루만에 올라 4개의 표지목을 달았다. 그가 전국에서 안가는 산은 없다. 경기도 고려산, 가리산에도 이름표를 달았고 심지어 섬인 거문도 불탄봉, 신안 상상봉 등도 그의 손길로 이름표를 얻었다.
오지산에 이름표를 달려면 온갖 고생을 해야 하지만 보람도 크다. "경기도 성산(400여m)은 정상이 어딘지 몰라 세 번이나 올라 정상을 찾았어요. 처음에 비닐코팅으로 이름표를 달았지요. 그랬더니 그 지역 산악회에서 나중에 표지석을 설치하더군요."
일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지로 유명한 강원도 평창의 발왕산도 표지석이 없었지만 그가 표지목을 달았다. "처음에는 한글로 '발왕산'이라고 붙여놓았더니 일본인들이 알지를 못해요. 그래서 다시 올라 한자로 새긴 표지목을 붙였어요."
올해만도 70여 곳 오지산에 표지목을 달았다는 그는 빛바랜 표지석을 보면 페인트 칠을 해주기도 하고 헷갈리는 등산로는 안내 리본도 달아주고 있다.
"대구 시민의 유일한 산인 앞산·대덕산·산성산 정상에는 아직도 표지석이 없어요. 남구청 인터넷에 5년전부터 글을 여러번 올렸지만 아직도 감감무소식이에요. 대구를 상징하는 산을 이렇게 푸대접해도 되나요."
그는 대구 신암산악회에서 올해 육송 판자를 200개나 받아 표지목 달기에 힘이 난다며 고마워했다.
한달에 10회 정도 오지산 표지목 달기에 나서는 그는 전국 오지산 표지목은 거의 모두가 자신이 달았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가 표지목을 달고나서 기념사진을 촬영한 앨범만도 10여 권에 이른다. 사진 한 장 한 장을 넘기면 땀으로 일군 그의 노력이 진하게 묻어 있다.
"명산은 나홀로 가는 산행이 가장 알차요. 자연도 깊이 음미할 수 있고, 자신과 사색할 시간도 주지요. 그런데 오지산은 등산로와 표지판이 제대로 없어 위험해요. 최소 3명 이상이 함께 등산해야 안전해요."
그는 모든 오지산 정상에 표지목을 달아주는게 꿈이다. 아직 절반도 채 못 달았지만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자신이 달아놓은 표지목을 보고 전국 방방곡곡 안전한 산행을 도와주기 위한 '희망의 표지목' 달아주기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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