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록달록한 돛과 보드를 타고 파도를 가르며 질주하는 윈드 서핑. 스릴과 낭만을 즐길 수 있는 수상 레포츠의 꽃으로 불리지만 막상 직접 즐기겠다는 마음을 내기는 쉽지 않다. 사치스러운 귀족 레포츠라는 편견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오해다. 윈드 서핑 장비는 초급자용 기준으로 중고로 100만원선에서 구입할 수 있고 일단 구입하면 별도의 유지비가 들지 않아 오히려 다른 레포츠에 비해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장비 구입이 부담스럽다면 레포츠숍에서 빌릴 수도 있다. 때마침 지역에서는 월 3만원이면 매주 토·일요일 이틀간 하루 3시간씩 윈드 서핑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 포항시 송도동 옛 송도해수욕장에서는 포항시가 지원하고 포항해양스포츠클럽이 운영하는 윈드 서핑 체험장이 마련돼 지역민들에게 윈드 서핑의 매력을 선사하고 있다.
13일 찾은 이곳은 한눈에 지형적으로나 기후여건이 윈드 서핑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옛 송도해수욕장 일대에 마련된 체험장은 도로와 인접해 접근성이 좋을 뿐 아니라 왼쪽은 방파제, 오른쪽은 포스코 등으로 삼면이 막혀 있어 안전해 보였다. 포항해양스포츠클럽을 운영하고 있는 임종태 회장은 "전국의 많은 윈드 서핑 체험장 중 가장 안전하고 접근성이 좋기로 소문나 있다. 윈드 서핑을 하다 보면 장비가 부러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삼면이 막혀 있어 장비가 고장나더라도 안전하게 되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비교적 강한 바람과 자주 바뀌는 풍향 역시 윈드 서핑에는 안성맞춤. 임 회장은 "바닷가에서는 바람이 자주 바뀌지만 이곳에서는 동해안을 오르내리며 바람 따라 장소를 옮기기에도 수월해 윈드 서핑의 최적지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여느 레포츠와 마찬가지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사전교육. 기구를 이용하다 보니 배울 것이 많았다. 바다에 들어가기 전 먼저 지상에서 돛과 보드의 명칭, 돛과 보드를 연결하는 방법, 주행원리, 기본기 등 기초적인 이론을 배운 후 본격적인 교육이 시작됐다. 날개를 들어 올리는 것으로 시작된 교육은 보드에 올라타는 법, 돛을 물에서 끌어올려 들어올리는 법, 중심을 잡고 보드를 타는 법 등 다양했다. 그러나 육지에서 서핑 보드를 타려니 왠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윈드 서핑이라는 게 바람을 맞으면서 살랑살랑 움직이는 편안한 스포츠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강사역을 맡은 임종태 회장이 "물 위에 올라가서는 균형 잡기도 힘들기 때문에 지상에서 충분히 연습해 바다로 나가야 안전하다"고 충고했다.
30분의 기본훈련을 마치고 곧바로 보드를 바다 위에 띄웠다. 막상 보드 위에 올라서니 또 저질체력이 말썽이다. 금세 다리가 후들거린다. 살짝 보드를 건드리는 파도에도 그만 중심을 잃고 바다에 풍덩 빠졌다. 보드에 올라서면 빠지고 일어서면 넘어지기를 몇 차례 반복한 후에야 '역시 물에서 하는 스포츠는 힘들다'는 진리가 마음속 깊이 와닿는다. 태우기를 거부하는 보드와 30여 분간 실랑이를 벌이고 바닷물을 잔뜩 들이켜 배가 서서히 불러올 무렵에야 겨우 보드 위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서서히 자신감이 생겨 다음 단계인 수면에 가라앉은 세일(돛)을 올리는 '세일 업'을 하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물 먹은 돛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 깃털처럼 가벼워 보였던 돛이 바위처럼 천근만근이다. "손 힘만으로 올리려고 하지 말고 다리 힘과 체중을 뒤로 실어 온몸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강사의 충고에 따라 다시 한 번 도전해 봤지만 힘 조절에 실패해 또다시 중심을 잃고 바다에 빠졌다. 이리저리 궁리하다 겨우 물 먹은 돛을 일으켜 세워 모양새를 갖추는 데 성공했다.
잠시 승리감에 도취해 우쭐해지는 순간 이번에는 바람이 말썽이다. 윈드 서핑은 바람과 파도의 흐름을 읽어 보드의 방향과 진로를 바꾸면서 속도를 조절하며 좌우로 움직여 나가야 하는데 아직까지 바람에 대한 감이 없다 보니 살짝 부는 바람에 바다로 풍덩 빠져버렸다. "절대 맞바람을 맞으며 자세를 잡아선 안 된다"는 강사의 말을 무시한 결과이기도 했다. 한 시간가량 실패를 거듭한 뒤에 겨우 바람에 순응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이제는 초보자들에게 마지막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방향전환. 그러나 생각보다 어려워 내내 엉뚱한 곳으로 가버렸다. 파도와 바람, 무게중심을 잡는 데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방향전환은커녕 어느새 바다 한가운데로 나와 버리기 일쑤였다. 조류 등의 영향으로 영원히 바다로 떠밀려 갈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 그때마다 해안으로 빠져나오기 위해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했다.
몇 번을 반복한 뒤에야 바람을 타고 서핑을 즐길 수 있었다. 보드 위에서 균형도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었고 바람도 적당히 불어 바다를 시원하게 가로질렀다. 순간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짜릿함이 온몸에 흘러내렸다. 가슴도 뻥 뚫리는 느낌. 이대로 수평선 끝까지 내달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조금 여유도 생겨 지칠 때면 가만히 보드 위에서 햇볕을 맞으며 쉬는 것도 색다른 기분이다. 보드 위에 축 늘어져 출렁이는 바다 위에 둥둥 떠 있으니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편안하다.
강습이 끝나고 "배우는 속도가 빠르네요" 하는 강사의 빈말(?)에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윈드 서핑을 하며 한껏 기분을 내긴 했지만 솔직히 하루 만에 윈드 서핑을 제대로 즐긴다는 것은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몇 시간이면 어느 정도 윈드 서핑을 즐길 수 있지만 흉내를 내는 수준에 불과하다.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며칠 정도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조만간 다시 이곳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윈드 서핑의 원리
'동력이 없는데 어떻게 바람에 맞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을까?'
윈드 서핑의 돛은 바람을 받아 멈추고 달릴 뿐만 아니라 돛에 흐르는 바람의 성질을 이용해서 추진력을 얻는다. 이때 돛은 비행기 날개와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비행기는 날개의 아래 위로 흐르는 공기의 속도가 다를 때 생기는 양력을 이용하여 난다. 비행기 날개 주위를 흐르는 공기의 속도는 날개 윗부분이 빠르고 아랫부분에서 느리다. 공기 속도 차이 때문에 날개 윗부분의 압력이 낮아지고 아랫부분의 압력은 높아진다.(베르누이의 정리) 이 압력의 차가 비행기를 뜨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는데 이를 양력이라 한다. 윈드 서핑의 돛도 같은 원리로 방향을 잘 잡아주면 양력이 생긴다.
비행기 날개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 돛의 주위에 공기가 흐를 때 돛을 경계로 해 돛이 휘어진 바깥부분은 속도가 빨라지고 안쪽은 속도가 느려진다. 이때도 역시 베르누이의 정리에 따라 속도가 빠른 곳은 압력이 낮아지고 느린 곳은 압력이 높아져 요트를 대각선 방향으로 밀어내는 양력을 발생시킨다. 이 힘은 바람이 돛에 부딪힐 때 즉각적으로 발생하며 보드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이다.
그렇다면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는 어떻게 진행할까. 정면에서 바람이 불면 돛을 날개 모양으로 만들면 옆으로 가게 된다. 그러나 배가 옆으로 가기 힘들도록 배 아래에 넓은 판이 달려 있다. 그래서 배를 바람 부는 방향에서 45도로 기울여 놓으면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도 갈 수 있다.
최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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