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사이 두차례나 대구 북구 노곡동에 침수 피해를 불러 온 '조야·노곡 배수펌프장'의 설계업체가 감리까지 맡아 공사관리 부실의혹이 일고 있다. 또 이 설계·감리업체는 전문가들의 건설기술 심의 의견과 주민 의견을 무시해 침수 피해를 키운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전문가들과 주민들은 제진기(펌프로 유입되는 물에서 쓰레기, 나무 등 부유물을 걸러내는 장치) 위험성을 수차례 제기했지만 설계·감리업체는 이 같은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다.
통상 감리는 설계대로 공사를 진행하는지 감독하고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설계를 변경토록 지도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노곡동 배수펌프장 경우 설계·감리 업체가 동일해 감리 역할이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매일신문이 17일 입수한 '노곡·조야동 배수펌프장 설치공사 실시설계 보고서'에 따르면 영남대 김수연 교수는 '제진기는 어떠한 경우에도 펌프의 작동에 방해되는 물질들을 제거할 수 있어야한다'는 심의 의견을 냈다.
한 달 사이에 두차례나 물에 잠긴 노곡동 침수 피해의 결정적 원인은 제진기가 부유물을 걸러내지 못하고 댐 역할을 해 물이 넘쳐났다는 것.
그러나 당시 펌프장 설계업체 D사는 "유입된 협잡물을 연속적으로 제거하는 로타리식 자동제진기라 방해되는 물질들은 유입 즉시 제거된다"며 심의 의견을 무시해 침수 피해를 키웠다.
D사는 또 '제진기 시설 설치부분에 새로 놓이는 배수박스가 기존에 있던 배수박스(현재 폐쇄됐으나 두 차례 물난리로 복구 예정)보다 굴절되므로 홍수시 유속에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북구청의 의견도 무시했다. D사는 보고서에서 "신설 배수박스는 기존 배수박스의 2배의 규모로 계획됐기 때문에 굴절 때문에 생기는 통수 능력 제한은 미미하다"고 밝혔으나 실제 침수 피해 당시 신설 배수박스는 '배수' 역할을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2월 펌프장 주민설명회 당시 주민들도 "펌프장 설치를 위해 기존 배수관로를 막고 수로를 우회해 설치하면 동네 북쪽에서 내려오는 쓰레기를 감당할 수 없다"고 북구청과 설계업체에 대책마련을 요구했지만 결국 묵살됐다.
이같이 주민과 전문가들의 심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은 D사가 감리까지 맡았기 때문이라는 게 업체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지역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 공사는 일반적으로 설계와 시공, 감리가 분리돼 제대로 공사 진행 상황을 감독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번의 경우 설계와 감리를 같은 업체가 같아 설계상의 과오를 바로잡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사발주처인 대구 북구청은 "특수한 분야와 특수 기술이 필요할 경우 설계·감리를 동시에 맡는 경우가 있다 "며 "노곡·조야동 배수펌프장 공사에 육갑문 설치 등 전문 기술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 책임감리를 맡긴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D사는 "제진기는 어떤 경우에도 잘 돌아가도록 했지만 2차 침수 피해 당시 언론에 알려진 20mm보다 훨씬 많은 60mm 정도의 비가 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며 "또 신설 하수박스의 경우 도시계획 도로 부분과 겹치지 않아야 된다는 행정 조치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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