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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원태의 시와 함께] 아픈 세상 / 황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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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에게는 늘 아픔이 있다

먹구름 잔뜩 품은 하늘이

언제나 천둥을 만들어내듯

지상의 눈동자에 휘두를 번개를 깊이 품고 있듯

가난한 사람에게는 사랑도

아픔이거나 깊은 흉터다

허리에 침을 꽂고 엎드려 있는데

먹고살기도 힘든데 안 아픈 데가 없다는

중년 여자의 서글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픔을 낫겠다고 약도 먹고

침도 맞는 거겠지만

아픔은 항상 어디선가 샘솟는다

아니, 아파서 산다

청춘을 불로 지진 사랑이

식지 않은 분화구가 되어

더러는 아픔을 빛나게 증명하듯

사는 건 아픈 일이다 그러나

아프고 아파서 아픔이 웃을 때까지

천천히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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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서 산다"는 시인의 토로가 찡하도록 적실하게 다가온다. 고통과 결핍은 어쩌면 육체적 현존의 불가피한, 즉 근원적인 조건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사는 건 아픈 일"인 셈이자, 유마힐처럼 '세상이 아픈 것'이다. "아픔은 항상 어디선가 샘솟는다." 가난이나 결핍은 그 아픔을 더욱더 뼈저린 것으로 만든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안 아픈 데가 없다는" 중년 여자의 서글픈 목소리는 세상 모든 중생(衆生)의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시인은 마침내 그 아픔을 '긍정'하기에 이른다. 산다는 건 근원적으로 아픈 일이지만, "그러나/ 아프고 아파서 아픔이 웃을 때까지/ 천천히 가는 길이"기도 하다. 아픔을 통해 존재는 더욱 절실해지고, 마음자리는 한없이 낮아져서, 이윽고 심연(深淵)처럼 깊어지는 것이리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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