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공정'으로 가는 태풍

태풍의 계절 9월이 지나갔다. 태풍 '말로'가 우리나라를 향해 올라온다기에 바짝 긴장했었다. '곤파스'가 서해안 일대와 중부지방을 강타해 큰 피해를 입힌 직후라 긴장감이 더했다. 다행히 '말로'는 방향을 틀어 남해로 빠져나가며 큰 피해는 없었던 것 같다.

태풍이 한바탕 휘몰아쳐 지나가고 나면 땅 위는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바람뿐인가. 태풍은 항상 큰비를 동반하고 다닌다. 인간이 쌓아올린 고도의 과학문명도 자연의 힘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곤파스'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이번에는 집중호우로 서울이 물에 잠기는 난리가 났다.

태풍은 그 폭력에 못지 않은 순기능도 갖고 있다. 즉 바다의 청소와 기후의 변화다. 태풍이 바닷물을 흔들어 아래위 뒤바꿈을 하며 바다 생물의 생태환경을 정화시킨다. 그리고 안간힘을 쓰며 버티는 긴긴 여름을 밀어낸다.

외교통상부에 태풍이 휘몰아쳤다. 장관 딸 특채 파동 여파로 한 조직이 수장을 잃었다. 정실특채 인사의 숨어있던 실상이 여기저기서 불거져 나와 전 부서 안이 들썩거린단다. 상처는 심하게 곪으면 터지게 마련이고 사실은 시간이 지나면 실체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자식을 빛나는 자리에, 인생을 좋은 모양새로 꾸려갈 꽃방석에 앉히고 싶은 마음이야 어느 부모에게는 없으랴. 허리 휘어가며 파출부로 자식의 과외비를 버는 엄마들, 기러기 아빠가 되어 외로움을 삭이지 못해 우울증을 앓는 아버지들이 다 그런 한 가지 바람 때문이다. 자식을 잘 앉히기보다 더 우선되는 것이 잘 가르치는 것 아닐까. 자리는 제 스스로 찾아야 웬만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가 될 것이다.

이번 태풍은 외교통상부뿐만이 아니고 각처로 불어가 우리 사회 곳곳이 정실 특채 운운하며 들썩인다. 바람은 본성이 진원지에 가만히 머물러 있지 않는다. 연방 움직인다. 진즉 불어야 할 바람이다. 일변 다행스럽기도 하지만 슬그머니 남해로 빠져나간 '말로'처럼 뒤가 흐지부지해서는 안 된다. 모든 이에게 능력에 따라 기회가 균등하게 돌아가도록 햇살은 골고루 퍼져야 하고 바람은 구석구석 불어야 한다.

폭우로 한바탕 오만을 부리고서야 더위는 물러갔다. 가을색이 완연하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에 가장 강력한 태풍이 불듯 우리가 겪고 있는 혼란이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라 여기면 견딜 만하지 않은가. 오래 만연된 관행을 밀어내고 '공정'이라는 새 바람을 몰고 오기 위한 몸살쯤으로 생각하고 싶다. 아픔을 동반하지 않는 변화가 있는가. 이참에 '공정'이 우리사회 모두가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수필가 박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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