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나라 사당을 참관한 공자가 의기(欹器'기울어진 그릇)를 보고는 무엇에 쓰는 것이냐고 물었다. 사당지기가 "유좌(宥座)라는 그릇이지요"라고 대답하자 공자는 "듣자하니 유좌라는 그릇은 가득 채우면 엎어지고 비우면 기대어 세워야 하며 알맞게 채워야 바로 선다고 하던데 정말 그렇소?"라며 제자 자로에게 당장 물을 떠오게 해 시험했더니 과연 듣던 대로였다.
공자가 "가득 채워도 어찌 엎어지지 않는 게 있겠느냐"고 탄식하니 자로가 "가득 차 있을 때 도는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이에 공자는 "가득 차 있을 때는 눌러서 덜어내는 길밖에 없다"고 답했다. "덜어내는 데는 어떤 도가 있습니까" 하고 되묻자 "덕행이 넓은 자는 공경으로, 땅이 많은 자는 검약으로, 지위가 높고 녹봉이 많은 자는 겸손으로 지키고 많은 부하와 강력한 무기를 가진 자는 두려움으로 지킨다. 이것이 눌러서 덜어낸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의기는 제나라 환공이 늘 오른편 곁에 두고 본 그릇으로 유좌지기(宥座之器)라고도 불린다. 후세 사람들이 그 본을 받아 직접 만들어 곁에 두려 했으나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금속 기물 위에 스스로 경계하는 글을 새겨 대신했는데 '좌우명'(座右銘)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행정안전부가 직원 특채 비리로 말썽이 된 외교통상부에 대한 특별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유명환 전 장관 등 10여 명의 고위 공직자 자녀 특채 과정에서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고 밝혔다. 영어 성적이 기준에 미달해도, 서류 전형 없이도 합격했고 일반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특채에 계약직 경력밖에 없는 사람이 뽑혔다. 일말의 원칙도 기준도 없다니 배추장수 문서도 이보다는 낫겠다. 심지어 어느 대사의 딸이 탈락하자 합격자를 6급으로 발령 내고 대사 딸을 5급으로 재선발하기도 했다. 최근 5년간 외교부 신규 채용자 698명 중 63%가 특별 채용이라는데 특혜 채용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무엇이든 가득 차면 넘치거나 엎어지는 게 자연법칙이다. 옛말에 "이익은 해로움의 근본이요, 복은 화의 시초다"고 했다. 이(利)를 함부로 구하면 해가 되고 복도 지나치면 화가 미친다는 말이다. '날카롭다'는 이(利)의 훈을 되짚어보면 글자의 속뜻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공직자들이 거창한 좌우명만 생각할 줄 알았지 이런 간단한 이치도 몰랐다면 일을 그르치고 이름을 빼앗겨도 할 말이 있겠는가.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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