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홍철칼럼-지방도 잘 살 수 있다(24)] 공무원도 정치인도 원치 않는 한국의 지방분권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선진국들은 모두 지방분권국가이다. 선진국 중 상대적으로 중앙집중적인 국가인 프랑스나 일본도 2000년대 들어와 국가경쟁력강화를 위해 지방분권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2003년 프랑스는 나폴레옹 이래 200년 전통의 헌법을 개정하여, 헌법 제1조에 '프랑스는 지방분권 국가이다'를 명시하였다.

수도권(파리) 집중을 완화하기 위하여 총리 산하에 특별기구까지 설치하여 정부기관 및 대학의 지방이전을 강력하게 추진하였지만, 지방 발전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국가경쟁력만 떨어뜨렸기 때문에 지방분권화로 전략을 바꾸기 위한 것이었다. 이웃나라 일본도 쇠약해지고 있는 국가경쟁력강화를 위해 전국을 인구 1천만 명 정도 단위의 도주제(道州制)로 지방행정체제를 개편하고, 지방분권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국가보다 지역이 경쟁단위가 된 오늘날의 세계에서 지역의 특수성을 제일 잘 아는 지방에 권한을 넘겨주는 지방분권 추세에 우리나라만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권력의 중앙집중이 가장 강한 나라 중 하나로서 지방분권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지방분권화는 이율배반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직속으로 지방분권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지만 지엽적인 국가사무의 지방이양과 위임 확대에 주력할 뿐, 지방분권의 본질인 실질적 주민자치와 지방재정확립 등을 위한 논의는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지방분권이 지방의 내발적 발전역량을 제고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향이라는 것에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음에도 우리나라의 지방분권화가 지지부진한 것은 적극적 추진주체가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중앙부처 공무원, 수도권의 학자'언론 등은 지방분권의 시행에 따른 부작용과 수용태세 미비 등을 내세우며 지방분권 시기상조 내지는 불필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심지어 우리처럼 좁은 국토(?)를 가진 나라는 사실상 하나의 도시국가라는 억지 논리까지 전개하고 있다. 한마디로 지방분권에는 관심도 없고, 중앙(서울)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집단인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입장에서 지방분권은 자신들의 생사(生死)와 직결된 문제이다. 지방분권의 실현은 그들이 지금까지 누리고 행사했던 거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분권과 혁신'을 기치로 내세웠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반발에 부딪쳐 결국 중앙권한을 지방에 넘겨주는 지방분권 대신에 차선책이라고 할 수 있는 수도권 기능의 지방분산 정책으로 세종시'혁신도시 건설을 추진하였던 것이다.

한편 국회의원들은 중앙부처 공무원들에게 힘을 써 지역사업을 많이 챙기는 것을 그들의 임무이자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의 입장에서 지방분권은 바로 그들의 권한과 일을 빼앗아 가는 사태를 초래하기 때문에 겉으로는 지방분권에 찬성하는 척하지만 내면적으로는 강력히 지방분권에 반대한다.

도지사'시장'군수 등 지방자치단체장들은 그 누구보다 지방분권을 원할 수 있다. 그러나 중앙정부로부터 사업이나 예산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주된 임무인 비수도권 자치단체장들이 지방분권을 강력히 주장하다가는 중앙정부로부터 괘씸죄에 걸려 큰코(?)다칠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마음은 있더라도 행동은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지방공무원들은 지방분권이 자신들에게 그야말로 백해무익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권한에 비례해 책임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지방분권으로 막강한 권한이 지방공무원들에게 주어졌을 때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이런 위험부담을 질 지방공무원들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그나마 지방분권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그룹이 있다면, 지역 활동가들 중심의 시민단체 정도를 꼽을 수 있지만, 이들은 힘이 없다. 목청껏 지방분권을 외치지만 돌아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뿐이다.

우리나라의 이러한 현실을 볼 때 '어떤 특단의 수단이 아니고는 지방분권을 이룰 수 없다'는 씁쓸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어쩌면 남북통일이 되어 국가권력 분담을 고민할 때에나 지방분권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가능할지 모르겠다. 모든 선진국들이 이미 시행하고 있고, 또 강화하고 있는 지방분권을 추진하지 않고도 대한민국이 과연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대구경북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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