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이 뮤지컬을 보게 된 것은 작가와의 인연과 주변의 강력한 추천 때문이었다. 사실 '작품 좋다'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외국인 노동자, 서울 달동네 이야기라는 소재로 연극도 아닌 뮤지컬이 어떤 감동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공연장을 찾았다. 공연 시작과 함께 아기자기한 소품들까지 신경 쓴 흔적이 보이는 사실적인 무대와 소극장이라는 좁은 공간을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극복해 낸 무대 전환이 눈길을 끌었다. 여기에 극이 진행될수록 탄탄하게 짜여진 스토리와 귀를 즐겁게 하는 음악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극 속에 점점 몰입하게 되었다.
뮤지컬 '빨래'는 자칫 진부할 수 있는 무거운 소재를 전혀 어둡지 않게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정겨운 인생살이를 그리고 있다. 서울살이 5년차인 27살의 강원도 아가씨 나영과 이주노동자 솔롱고의 사랑 이야기를 큰 줄기로, 욕쟁이 주인 할머니, 돌아온 싱글 희정 엄마 등 우리 이웃들의 삶과 흡사한 캐릭터들이 등장, 다양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의 삶이 날줄과 씨줄로 정교하게 얽혀 있다. 사회적 약자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때론 눈물을 자아내게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밝은 미래를 노래하고 있어 보고 나면 마음이 정화되고 순수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또한 주'조연을 나눌 수 없을 정도로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하나하나 살아있다는 것과 '참 예뻐요' '슬플땐 빨래를 해요' 등 가슴에 와 닿는 가사와 멜로디도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다. 장점이 많은 뮤지컬이라 그런지 지난해 임창정이 우연히 공연을 보고 외국인 노동자 솔롱고 역에 출연을 자청하는 등 뮤지컬 배우라면 한 번쯤 해보고 싶어할 정도로 배우들 사이에서도 인기 있는 작품이다.
'빨래'를 직접 쓰고 연출한 작가 추민주는 대구 출신이다. 영남대 재학시절 연극반인 천마극단에서 활동한 필자의 후배이기도 하다. 공연을 보고 난 후 후배가 무척이나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작가는 국문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영화과에서 작가 과정을 이수했다. '빨래'는 한예종 졸업작품으로 첫선을 보인 후 2005년부터 대학로에서 1천 회 공연, 20만 관객을 돌파하며 장기공연 중이다. 극 중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서점 장면은 작가가 대학시절 대구 '제일서적'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느끼고 보았던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어 리얼리티가 살아있다. 제11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작사상, 극본상을 수상한 데 이어 올해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작사, 작곡상과 극본상을 수상했다. 이미 수상 이전부터 관객들뿐 아니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빨래'의 가장 큰 미덕은 관객과의 공감이라고 할 수 있다. '빨래를 하면서 더러운 오늘을 씻고 잘 다려진 내일을 입는다'는 노랫말처럼 극중 인물들이 마음의 상처를 씻어내고 희망을 노래하는 모습이 지저분한 얼룩을 지우는 '빨래'가 주는 의미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삶의 무게가 다를 뿐,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등장인물들의 일상이 우리네 삶과 너무도 닮아있어 때론 나 자신이 그 속에 겹쳐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빨래'는 객석에서 배우가 등장하기도 하고 2막 시작 장면인 '작가 사인회' 장면에서는 관객에게 직접 사인을 해주고 무대 위에서 기념사진 촬영도 해주는 등 관객과의 소통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따뜻하고 예쁜 뮤지컬 '빨래'는 일상에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주는 작품이다. '빨래'를 보고 나면 깨끗하게 세탁된 빨래를 보는 것만큼이나 기분이 좋아지고 커튼콜 때는 내 맘속의 얼룩을 지워준 배우들과 제작진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아끼지 않게 된다.
최원준(㈜파워포엠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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