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기고에서 필자는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개방(Open System)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어렵게 세계 최고가 된 기업들도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경우가 있는 반면 어떤 기업들은 수십 년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경우가 있다. 유구한 중국의 역사를 놓고 보더라도 한나라 이래로 중국에 존재한 크고 작은 왕조는 무려 60개나 된다. 그런데 이들 왕조의 평균 수명은 불과 64.77년에 불과하다. 300년을 넘긴 왕조는 하나도 없고, 200년을 넘긴 왕조는 청나라(296년), 당나라(289년), 명나라(276년), 전한(前漢)'요나라(각각 209년) 등 5개뿐이다. 10년을 못 넘기고 요절한 나라도 두 개나 된다. 한 시대를 주름잡던 왕조도 100년을 넘기기 어려운데 요즘 같이 치열한 글로벌 경제전쟁시대에 한 기업을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수십 년간 유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 왜 이렇게 왕조의 존속기간에 차이가 날까? 이에 대한 해답을 당나라 태종 이세민과 신하들의 토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왕조를 건국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몸소 체험했던 이세민은 황제에 등극한 후 신하들과 모인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했다. "창업과 수성은 어느 쪽이 어렵소?"
방현령이 대답했다. "창업은 우후죽순처럼 일어난 군웅 가운데 최후의 승리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인 만큼, 창업이 어려운 줄로 아나이다." 그러나 위징의 대답은 달랐다. "예로부터 임금의 자리는 간난(艱難) 속에서 어렵게 얻어, 안일(安逸) 속에서 쉽게 잃는 법이옵니다. 그런 만큼 수성이 어려운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그러자 태종이 말했다. "방공(房公)은 짐과 더불어 천하를 얻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소. 그래서 창업이 어렵다고 말한 것이오. 그리고 위공(魏公)은 짐과 함께 국태민안을 위해 항상 부귀에서 싹트는 교사와 방심에서 오는 화란을 두려워하고 있소. 그래서 수성이 어렵다고 말한 것이오. 그러나 이제 창업의 어려움은 끝났소. 그래서 짐은 앞으로 제공(諸公)과 함께 수성에 힘쓸까 하오."
이후 당 태종은 모든 시스템을 수성에 맞춰 제도를 개혁하고, 널리 인재를 등용했으며, 학문과 문화 창달에 힘쓰는 등 끊임없는 변화에 주력했다. 더불어 스스로의 체질 개선에도 주력해 간언을 마다하지 않아 후세 군왕이 치세의 본보기로 삼는 성세인 '정관의 치'(貞觀之治)를 이룩했다. 그 결과 당나라는 한족이 세운 왕조 중 가장 오랜 기간 유지됐다.
이러한 원리는 현대 경제전쟁의 시대에서 글로벌 기업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스탠더드 앤 푸어스(S&P)에 따르면 1955년 미국기업의 평균수명은 45년이었지만 요즘엔 13년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한국기업의 평균수명도 고작 10년에 불과하다. 그만큼 과거에 비해 경쟁이 치열해져 살아남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많은 초우량 장수기업들이 존재한다. 미국의 GE는 올해로 창립 118년을 맞고 있으며, 'Johnson & Johnson'은 창립한 지 124년이 되었다. '베레타'는 1500년대 초 창업주 베레타가 이탈리아 작은 마을에 세운 총기 제조사다.
장수기업의 대가 윌리엄 오하라 교수는 기업의 장수 이유로 기업쇄신을 꼽고 있다. 베레타의 경우 시대 변화에 맞춰 가장 최신 기술을 도입해 지속적으로 변신했다. GE도 창업 초기 기술재를 시작으로 소비재'전력, 산업재'항공, 환경'에너지'금융 등 수십 년간 세계 최고를 지속해온 사업 포트폴리오마저 과감히 바꿔가며 기업쇄신을 끊임없이 추구했으며, 그 결과 2005년 기준으로 25년 전과 비교해 매출은 5.5배, 순이익은 12배 증가하는 뚜렷한 성장을 했다.
국내 기업쇄신의 사례로는 두산그룹을 들 수 있다. 두산은 잡화 상점으로 출발해 100년가량 한국 소비재산업의 대표주자였으나 1990년대 식음료 사업을 매각하고 중공업과 기계 등으로 사업 재편에 나섰다. 구조조정 원년이던 1996년 총매출이 3조9천억원이었지만 2007년에는 18조6천억원으로 11년 만에 4배 이상 성장했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키워드는 바로 '변화'인 셈이다.
석호익(KT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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