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로 양분됐던 독일이 통일됐다. 부모로부터 의자 하나 물려받을 게 없었던 에두아르트는 어느 날 아버지의 세무사로부터 베를린-프리드리히스하인(옛 동베를린 지역)에 있는 임대주택 건물을 상속받게 됐다는 연락을 받는다. 동생 로타르와 공동으로 상속받게 된 이 주택은 생각해본 적도 없는 횡재였다. 동생과 의논한 끝에 에두아르트는 그 주택을 매각하기로 하고 베를린으로 향한다.
상속받게 된 집은 엉망이었다. 근처의 집들은 전후(2차 세계대전)의 상태 그대로였다. 몇몇 집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집들은 붕괴를 막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조치해놓은 정도였다. 회벽이 떨어져 벽돌이 알몸을 드러내고, 발코니를 받치고 있는 철제 보는 녹슨 구멍이 너무 커서 밀기만 해도 빠질 것 같았고, 창문틀은 느슨하게 박혀 있었다. 호수를 알리는 숫자 8과 3을 구분할 수 없었다.
상속받은 집이 아직도 무너지지 않고 서 있다는 것이 기적처럼 보였다. 그가 쓰레기로 둘러싸인 집으로 다가갔을 때 세입자들로 보이는 사람이 총격을 가해왔다. 가까스로 총격을 피한 그는 어떻게 경찰국까지 달려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경찰은 말한다. "세입자들은 이 집주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어요. 집주인들 역시 대부분 등기편지를 받고 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주택 소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그래서 차를 타고 와서 '너희가 20년 혹은 40년 동안 살고 있는 이 집은 내 집이다. 너희들 중 누가 남게 될지 보자'고 말하죠. 그러면 민중의 영혼은 분노로 끓어오릅니다."
통일을 맞아 '생각하지도 못했던 유산'을 받은 '서독 사람'과 통일을 맞아 '존재조차 몰랐던 집주인을 알게 된' '동독 사람'은 그렇게 조우하고 충돌한다. 그리고 이 충돌은 그 해결이 만만치 않다.
(아마도 동독 출신일게 분명한) 경찰관은 '총질을 해댄 그들은 가난한 아이들이며 철없는 그들, 불쌍한 그들을 이해하라'는 투로 이야기한다. 이에 에두아르트는 '그들은 가난하지 않다. 그들은 나이키, 아디다스 신발을 신고 있었다'고 항변한다. 이에 경찰관은 "그렇다면 선생님, 우리는 영원히 VEB 붉은별표(구동독 인민 소유기업)를 신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라고 되묻는다.
단순히 신발의 문제, 오해의 문제, 철이 덜든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날 통일을 맞이한 동독과 서독의 근본적인 인식(차별, 불쾌, 분노, 난처함, 혐오) 등이 상징적으로 내재된 대화로 볼 수 있다.
에두아르트는 이 건물을 철거하고 싶었다. 철거하고 새 집을 짓든, 매각하든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철거에는 갖가지 복잡한 법적절차가 불가피했다. 그 복잡한 절차를 수행한 뒤에는 '오직 집주인인 에두아르트가 직접 위탁하고 지불한 공병대를 데려와 건물 내 접근 가능한 모든 창과 문을 막은 뒤에 철거작업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약 6만마르크의 거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그러나 이 모든 조건이 채워지는 것으로 끝은 아니다.
"조건이 다 채워지면 마지막으로 선생님과 선생님의 집 사이에는 양심의 문제가 남지요."
경찰관의 말이다. 통독이 됐다고, 어느 날 서류 봉투를 받았다고, 존재조차 몰랐던 집을 덥석 물어갈 생각이냐고 묻는 것이다. 난감해진 집 주인 에두아르트는 이렇게 묻는다.
"그럼 철거하지 않고 그냥 두면 쓰레기 수거비며 수도세, 전기세는 누가 내죠?"
"그야 집주인이죠."
지은이는 이 소설을 통해 나치와 분단이라는 독일 역사를 통찰한다. 더불어 분단 국가에서 통일 국가로 변화하는 독일의 한 주택을 통해 인간 간 이념과 사랑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를 탐구하며 자아를 찾아간다. 사람들은 장벽의 붕괴를 언제나 원했지만 이제 그 결과와 함께 살아야 한다. 말하자면 역사의 문제는 결국 개인의 문제이며, 역사는 결국 개인사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은이 페터 슈나이더는 1940년 독일 북부 뤼벡 출생으로 정치와 사회참여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독일의 분단과 통일을 주제로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표했으며 독일 현대문학계의 살아있는 양심으로 불린다. 434쪽, 1만3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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