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서울 신세계백화점 신축공사에서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 공사장 가리개로 디자인되어 이목을 끈 적이 있었다. 중절모에 레인코트 차림의 신사가 떼로 등장하는 혹은 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재현된 이미지만 놓고 보면 영락없는 '인간비'를 그린 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영화 매트릭스에서 숫자와 글자들이 쏟아지는 부분 등도 를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이 그림이 신세계백화점에 설치된 지 얼마 되지 않은 2006년 겨울 서울시립미술관과 벨기에 왕립미술관이 공동으로 주최한 '초현실주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전이 열렸다. 전시는 3, 4년 전부터 기획됐던 행사였지만 우연의 일치였는지 모르지만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회가 열리자마자 전례없이 관람객 35만 명이라는 흥행기록을 세우는 이변을 낳았다. '20세기 현대미술의 거장'이며 '창의력 교육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마그리트는 그전까지 우리들에게 그렇게 친숙한 작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독특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일상의 사물,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선언하는 새로운 시각언어로 표현되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가 믿어 왔던 상식이나 철학 등을 뒤흔들어 놓는 일대 변혁을 가져다준 '마그리트 미학'을 최근 기업들이 가치 혁신과 창의력 개발에 이용하려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라는 이 작품은 캔버스에 파이프가 하나 그려져 있고, 그 밑에 "Ceci n'est pas une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라고 쓰여 있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문장과 그림이다.
분명 파이프를 그려놓았는데 파이프가 아니라고 적은 내용을 보면 무척 당황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천천히 생각해 보자. 그 캔버스에 그려진 것은 파이프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파이프 모양을 한 그림일 뿐이다. 단지 겉모습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것이 파이프라고 단정한다. 그것은 사물의 기원을 따지기 때문이다. 그림은 반드시 실제와 닮게 그려진다고 믿어 버리는 뿌리 깊은 관습 때문이다.
20세기 미술사에서 독특한 영역을 개척한 마그리트는 이처럼 끊임없는 혁신과 창조, 역발상 블루오션 개척자로 활동하며 환상적인 초현실주의자의 진면모를 이끌어 나간 위대한 예술가였다.
김태곤(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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