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예금금리 연 2%대 추락…짙어가는 '초저금리' 그림자

곳곳 후유증 징후…경제 '걸림돌' 우려

초저금리 시대가 계속되면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저금리는 주식 등 자산 투자에 대한 과열 현상을 일으키고 인플레이션 압박과 가계 부채 급증 등 폐해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또 자칫 한국은행이 통화 정책을 통한 경기 조절 기능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가만두면 돈 까먹는 시대

시중 금리가 하락하면서 채권의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은행 예금 금리도 연 2%대로 추락했다. 확정금리 금융상품에 투자해서는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시대가 된 셈이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의 1년 만기 '자유자재정기예금'의 금리는 연 2.93%에 불과하다. 이는 한국은행이 집계한 만기 1, 2년 미만 정기예금의 가중평균 금리 기준으로 지난해 5월 기록한 역대 최저치인 연 2.94%보다 낮은 수준이다. 타 시중 은행들도 정기예금 금리를 일제히 내렸다.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외환은행의 '예스큰기쁨예금'의 금리는 연 2.75%, 농협의 '큰만족실세예금'은 연 2.80%에 머물고 있다. 하나은행의 '고단위플러스 금리연동형' 예금과 국민은행의 '국민수퍼정기예금'도 각각 2.90%에 그친다. 우리은행은 정기예금 금리를 0.1~0.15%포인트, 적금금리를 0.1~0.2%p 각각 내렸다. 신한은행도 1년 만기 '월복리정기예금' 최고 금리를 연 3.6%로 종전보다 0.1%p 인하했다.

이처럼 은행들의 예금 금리가 떨어진 것은 시중금리를 대표하는 국고채의 실질금리가 18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떨어진 데 따른 것이다. 1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3년 만기 국고채 실질금리는 8월 연 1.13%에서 지난달 -0.12%로 떨어졌다. 지난달 3년 만기 국고채의 월 평균 실질금리는3.48%였고, 소비자물가상승률이 3.6%였음을 감안하면 연 0.12%를 손해본다는 뜻이다. 단기물인 1년 만기 국채의 실질금리도 지난달 -0.6%p로 하락했고, 5년 만기 국채의 실질금리 역시 8월 1.67%에서 9월에는 0.31%로 추락해 '마이너스' 진입을 앞두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기준금리 동결 이후 더욱 빨라지고 있다. 국고채 3년물은 한은이 3개월째 기준금리를 동결한 14일 3.08%를 기록했고, 15일에는 사상 최저치인 3.05%를 나타냈다. 물가상승률과 비교하면 실질금리는 -0.55%에 불과하다.

◆주식시장을 떠도는 부동자금

초저금리 시대에 갈 곳을 찾지 못한 부동자금은 은행을 빠져나와 증시 주변을 맴돌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권의 수신 잔액은 8월 3조5천억원이 줄어든 데 이어 9월에도 3조3천억원이 감소했다. 반면 증시 대기자금인 고객예탁금과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액은 꾸준한 증가 추세다. 고객예탁금은 이달 13일 현재 14조6천750억원으로 지난 8월 말 12조6천814억원보다 2조원 늘었다. CMA 잔액도 41조9천450억원으로 지난해 말 38조2천330억원보다 9.7% 증가했다. 빚을 내 주식에 투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에 투자하는 신용거래 융자액은 14일 현재 5조3천230억원으로 올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투자자 예탁금도 14일 현재 14조5천850억원으로 지난해 말 11조7천870억원에 비해 23.7% 늘었다. 우리투자증권에 따르면 8월 기준 단기 부동자금은 645조원에 이른다. 이는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8월 535조8천억원과 비교하면 110조원이나 늘어난 수준이다.

은행에서 빠져나온 자금은 랩어카운트나 은행 유사상품으로 몰리고 있다. 1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8월말 현재 랩어카운트 계약자산은 32조3천283억원으로 7월말에 비해 2조5천7억원 늘어났다. 고액 자산가들이 몰려들면서 1인당 계약잔고도 늘고 있다. 1인당 랩계약 잔고는 지난해 1월 2천800만원 수준에서 올 1월 4천100만원으로 늘어난 데 이어 지난 8월 말 현재 5천646만원까지 급증했다. 은행들이 대응해 내놓은 운용·자문사 연계 특정금전신탁이나 사모펀드에도 돈이 몰리고 있다.

◆물가인상, 가계부채 급증 우려

돈값이 떨어지면서 자산 거품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돈값이 싸면 소비자와 기업들이 돈을 빌려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고, 자산가격 급등을 일으킨다. 특히 최근에는 부동산 침체가 계속되는 상황이어서 부동자금이 주식시장으로 한꺼번에 흘러들어가 거품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고수익을 추구하는 대기성 자금은 주가가 상승세를 타거나 부동산 가격이 움찔하면 순식간에 몰려갈 가능성이 있다.

초저금리가 장기화되면 인플레이션으로 되돌아올 가능성도 크다. 특히 곡물 가격 및 원자재값 상승에 따른 해외발 인플레이션 압력도 커지는 상황이어서 국내 물가 상승 압력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적지않은 가계부채도 부담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가처분소득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기준으로 153%로 영국(161%), 호주(155%) 등과 함께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금리가 갑작스레 대폭 인상되면 서민들의 이자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이 무력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 내릴 여지가 없는 금리 수준이 계속되면 추가 부양책이 필요할 때 금리를 '제로'까지 내려도 경기 부양이 되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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