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5시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 새벽을 뚫고 청소차가 멈춰 섰다. 쓰레기 수거트럭에서 급하게 내린 김모(50) 씨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지만 귀찮다는 듯 돌아섰다. 하는 수 없이 이날 오후 생활폐기물 처리 대행업체에서 퇴직한 이모(58) 씨를 수소문 끝에 만났다. 이 씨는 지난 1990년부터 울진군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다 2005년 민간위탁에 따라 저임금과 열악한 근무 조건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뒀다.
"일은 힘들었어도 행복했습니다. 계약직이지만 공무원이라는 자부심도 있었고 보수(250만원)도 괜찮아 가장으로서 뿌듯함도 있었지요."
이 씨는 민간위탁으로 옮긴 뒤 170만원으로 보수가 줄었다. 이에 대해 업체에서는 일하는 시간이 줄었으니 당연히 급여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그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꼼수일 뿐"이라고 항변했다.
"업체가 이익내기 가장 만만한 방법이 인건비 줄이기 아니겠어요. 돈을 적게 주기 위해 근무시간을 확 줄였고, 효율성을 이유로 업무량을 늘려 우리들을 힘들게 했지요."
이 씨처럼 군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다 민간위탁업체로 고용 승계된 사람은 K업체 18명, D업체 17명. 하지만 현재까지 남은 사람은 K업체 5명, D업체 8명뿐이다. 업체는 이들의 퇴사 이유에 대해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퇴사한 사람들의 입장은 달랐다. 고용불안과 적은 임금, 높은 노동 강도 등을 이유로 들었다.
◆민간위탁의 흑자는 인건비 줄이기
직영하는 자치단체의 경우 환경미화원 자리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하지만 위탁은 수입이 적고 정규직 비율도 낮다. 위탁업체 직원들은 주말을 제외하고 주 5일 하루 8시간 이상 꼬박 일하지만 아무리 많이 받아도 200만원을 넘기 힘들다. 직영의 70% 수준이다. 업체들은 매일 2회 이상 생활폐기물을 수거한다고 하지만 한 달 가까운 시간을 지켜본 결과 하루에 한 번뿐이었다. 일하는 시간을 줄여 비용을 절감해 보자는 심산이다.
업체들의 전형적인 인건비 줄이기 수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70만원도 아까운지 새벽시간대의 거리 청소 인력은 60, 70대 할머니로 충당하고 있다. 울진읍내 중심가로를 청소하고 있는 한 할머니는 "놀면 뭐해, 60만원이 어디야"라며 업체의 얕은 상흔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질만 재촉했다.
◆협약서도 업체 입맛대로 작성
정년을 보장하기로 하고 군에서 고용승계한 직원을 어떻게 업체가 마음대로 감원할 수 있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울진군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 위·수탁협약서'에서 답을 찾았다. 2007년 9월 계약서(2년 계약)를 보면 제6조(위탁조건)에서 고용 승계한 환경미화원을 정년(57)까지 근로 보장해야 하며, 현행 보수수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7조(준수사항)에서는 환경미화원 해고 통보 시 군에 사유를 밝히고 사전협의를 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2009년 12월 31일(5년 계약) 협약서는 을의 입맛대로 6조, 7조가 대폭 수정돼 있다. 정년보장, 급여수준 유지, 해고 시 군과 협의 등의 조항이 통째로 삭제됐다.
이에 대해 울진군 한 관계자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업체에서 조정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울진군 감사과의 시각은 다르다. 한 관계자는 "5년이라는 기간을 보장받고 인건비에서 자유롭기 위해 근로계약도 마음대로 바꾼 것은 분명 업체와 관계기관의 암묵적인 결탁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울진·박승혁기자 ps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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