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명맥을 이어온 대구 약령시가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 내년 8월 현대백화점 개점을 앞두고 도심 상권의 지각변동이 예상되는데다 대중교통전용지구(반월당네거리∼대구역네거리 1.05㎞) 주변도로에 대한 뾰족한 교통대책도 없어 약령시에 심각한 교통 체증이 일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백화점 측은 백화점 부지에만 셋백(교통완화 구간) 구간을 설치하면서 '할 일은 다 했다'는 입장이고 대구시마저 대책 마련에 나 몰라라 하고 있어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다.
◆30년 상권 일대 지각 변동
현대백화점 개점을 앞두고 도심 상권이 꿈틀대고 있다. 현대백화점 개점 소식이 전해지자 반월당역 17, 18번 출구(현대백화점 방향) 주변 메트로 지하상가 미분양 물량이 한 달 만에 동나는가 하면 백화점 주변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1970, 80년대 화교와 요정 등 중앙로를 중심으로 한 북서편 상권이 명성을 떨친 이래 도심 상권은 대구백화점 동성로를 축으로 이동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현대백화점이 들어오면 북동편으로 빼앗긴 약전골목 일대 상권이 30년 만에 되살아날 것으로 보고 있다.
1980년 이래 도심 상권은 중앙로를 넘지 못했다. 오히려 대구역과 중앙로역을 중심으로 롯데 영플라자, 교보문고 등으로 연결되는 롯데백화점 대구점 상권이 동성로와 만나 더욱 견고해졌다. 그러나 현대백화점 개점, 동아백화점 이랜드 인수 등 변수가 작용하고 두 백화점 간 지하통로 연결 소문 등 상생 기류가 돌면서 이 일대 상권은 더욱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메트로센터 노태훈 총무팀장은 "메트로 동아백화점 끝부분은 상가가 많이 비어있었는데 현대백화점 개점 소식이 전해지자 상가 분양이 속속 이뤄지는 등 침체된 상권이 살아나고 있다"며 "심지어 지금은 적자를 보지만 내년 8월 백화점 오픈 때까지 안 나가고 버티겠다는 상인들까지 등장했다"고 말했다.
약전골목 주변 사설 주차장(17개소 309면)에도 투자 붐이 일고 있다. 안정적인 투자의 대명사인 사설 주차장에 건물을 짓고 임대수익으로 전환하겠다는 업주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 식당 건물을 헐고 주차장을 운영해 오고 있는 김모(42) 씨는 "현대백화점 효과를 보고 건물을 세워 옷가게 등 임대사업을 할까 고려 중"이라며 "업종에 따라 임대료가 큰 차이가 있는 만큼 사업성은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약전골목 붕괴 우려
도심 상권의 변화가 약전골목에는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개통한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 이면도로에 대한 소통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시점에서 현대백화점이 들어서면 500년간 명맥을 이어온 약전골목의 상권 붕괴가 가속화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대백화점의 개점 시기를 늦춰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재 약전골목 일대는 교통대란이 일고 있는데다 임대료마저 들썩거리고 있는 탓에 영세 약재상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 30여 년간 약재상을 운영해오고 있는 여운환(64) 씨는 "손님이 너무 없고 차들만 넘쳐난다"며 "그런데 현대백화점이 들어오면 차가 더 막힐 것이고 임대료도 상승할 것으로 보여 영세상인들은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군다나 약전골목은 대구시의 무관심 속에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고 있다. 2004년 지역특화발전특구에 대한 규제특례법 제29조(약사법에 관한 특례)에 의해 약령시는 한방특구로 지정됐지만 한 해 3억원의 예산 지원만 받을 뿐 별다른 규제나 보호책이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약령시 한의원들이 하나둘 빠져나갔는가 하면 약령경매시장은 전국적 명성을 잃은 지 오래라는 것.
대구시에 따르면 약령시 도매시장 매출은 지난해 34억원에 이어 올해는 35억원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1억원의 매출이 늘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대란의 직접 영향권이었던 지난해와 비교해 올해 경기 상승 요인을 감안할 때 매출이 20% 이상 감소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약전골목 한 상인은 "이전 약전골목에는 네 집 걸러 한 집이 한방병원일 정도였는데 지금은 범어네거리와 만촌네거리 사이에 들어선 한의원 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현대백화점은 지역 돈을 빨대처럼 빼 나갈 게 뻔하다. 대구시가 애초부터 들인 게 잘못"이라고 말했다.
◆대구시, 대책 내놔야
도심 교통, 상권 등 거센 후폭풍을 몰고 올 현대백화점과 시는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와 2013년 세계에너지총회(WEC) 대구 개최를 앞두고 도시관광계획 등과 맞물린 거시적 차원에서 약령시 활성화 방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현대백화점 측은 현대백화점 부지만 셋백구간을 설치한 뒤 '할일은 다 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백화점이 들어서면 달구벌대로의 교통 대란이 자명한 상황 앞에서도 현대백화점∼미소시티아파트 사이 도시정비구간에 대한 셋백 설치에는 무관심하다.
현대백화점 측은 "백화점 부지 셋백은 설치하지만 다른 곳은 우리 책임이 아니다"고 못 박았다.
김경민 대구YMCA 사무총장은 "현대백화점이 개점하면 도심 일대는 교통대란과 함께 약전골목 상권은 급속히 쇠퇴할 것"이라며 "대구시는 현대백화점과 함께 약령시를 활성화시킬 별도 기구를 구성하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한 전담부서를 꾸려야 한다"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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