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학 입학 사정관의 생생한 현장목소리

잠재력 입증 만만찮아…"私교육서 답 찾지마라"

교수, 교사 출신의 현직 입학사정관이 책을 내고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풀어냈다.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교수, 교사 출신의 현직 입학사정관이 책을 내고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풀어냈다.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앞으로는 학위를 따기 위해 대학에 가기보다 좋은 직업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을 확대시켜 나가겠습니다." "국·영·수만 잘하는 학생을 뽑는 게 아니라 체육도 잘하고, 예술도 잘하는 글로벌 인재를 키워나가겠습니다." 이 두가지 답변은 모두 '입학사정관제'를 가리키고 있다. 화자인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이미 여러 자리에서 입학사정관제를 거론했다. 입학사정관제가 현 정권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라는 점도 누차 강조했다. 입학사정관제는 수많은 대입 전형 중의 하나를 넘어 공교육 바로 세우기의 출발점이자, 21세기형 인재 양성 도구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현장에선 어떨까. 이달 초 '입학사정관 그들의 생각을 듣는다'(이신 펴냄)는 책을 공동 저술한 6명의 입학사정관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권현정(경북대·교육학 박사), 남인국(금오공과대·문학박사), 박기용(금오공대·경상공고 교사), 손종훈(금오공대·문학박사), 이현철(경북대·철학석사), 임경식(안동대·교육학석사) 씨 등 대구·경북 대학에서 활동 중인 입학사정관들이다.(이름 가나다 순) 고교 학교생활기록부와 자기소개서 등 다양한 대입전형 자료를 심사하고, 지원 학생의 잠재력·적성을 평가해 선발을 담당하는 전문가들이다. 이달 4일 오후 매일신문사에서 가진 토론에는 손종현 대구가톨릭대 교수(전 경북대 입학사정관·참여정부 교육혁신위원회 상임전문위원)가 함께 했다.

◆입학사정관이 생각하는 입학사정관제는?

저자들은 지난해 경북대에서 180시간의 입학사정관 연수를 마쳤다. 이들이 책을 내게 된 것은 연수를 통해 나름의 깨달음과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입학사정관제가 학생에 대한 평가권을 대학이 아니라 교사에게 돌려주는 것이라는 말이 가장 가슴 깊이 와 닿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고교 교육과정을 살리자, 학생들의 인성을 회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강의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연수가 즐거웠습니다."(박기용)

입학사정관제는 수능 또는 학생부 성적만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던 기존 방식을 탈피해 해당 지원자의 전인격적인 평가를 지향하고 있다. 지원자의 현재 성적만이 아니라 미래의 잠재력에 주목한다는 점만 봐도 이 제도의 평가 도구가 얼마나 혁신적인가를 보여준다. 인간의 잠재력에 주목하기 때문에 컴퓨터가 아니라 사람(교사·입학사정관)이 평가 주체가 된다.

손종현 교수는 "현재와 같은 수능 일변도의 선발 과정 아래에선 고교 교육과정의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하다"며 "점수에 맞춰 대학을 정하고 전공을 택하다보니 대학 교육과정도 파행으로 흘렀다"고 입학사정관제의 등장을 설명했다. 이현철 사정관은 "입학사정관제는 해당 학생이 고교 교육과정 내에서 얼마나 충실히 공부했는가를 보는 것"이라며 "이 제도가 정착되면 고등학교 교사들이 수능 점수를 올리는데만 열중해서는 안된다. 제자들의 장점과 특기를 학생부에 충실히 기재하면 된다"고 했다.

◆입학사정관제, 오해와 진실

입학사정관제는 이처럼 교육적 이상(理想)의 실현에 근접한 제도다. 하지만 이런 측면 때문에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회의론들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입학사정관제가 학생의 잠재력만을 보는가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것는 아니다. 대학은 일정한 수학 능력을 바라고 있고, 이 때문에 입학사정관제 1단계 전형에서 일정 수준의 학생부 성적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기존의 학생부 중심 선발 전형(수시)과 다른 것은 뭘까.

손종훈 사정관은 "1차를 통과한 지원자 가운데 20% 정도가 2단계 면접에서 뒤바뀐다. 성적이 뒤처진 지원자가 비교과 영역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합격한다는 얘기"라며 "비교과 영역을 배제했던 기존의 제도와 비교하면 이는 큰 차이"라고 강조했다.

지원자들은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가져야 한다. 상당수 지원자들이 자신의 학생부·수능 점수로는 도전하기 어려운 대학이나 전공에 합격하는 '넓은 문'으로 여기지만, 입학사정관제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1단계 선발 기준이 분명히 존재하고, 2단계에서는 자기소개서·학생부 등을 근거로 자신의 잠재력을 면접관에게 입증해야 한다.

특히 입학사정관들은 지방 학생, 특히 남학생들이 면접에서 실점을 하는 경향이 적지않다고 지적한다. 이현철 사정관은 "성적도 좋고 자기소개서도 잘 써왔는데, 질문을 해도 대답을 잘 못하는 지원자가 있다. 입학사정관들은 최대한 얘기를 들어주려는 입장인데도, 주눅이 들거나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 지원자들은 좋은 인상을 줄 수 없다"고 했다. 권현정 사정관은 "어떤 여학생은 성적은 뒤처졌지만 독학으로 일본어를 공부하고 일본 문화에 대한 높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며 "입학사정관제는 바로 이런 학생들을 선발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일부에선 입학사정관들의 전문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사정관 1명당 수백명의 지원자를 평가해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권 사정관은 "경북대 경우 지난해 수시에서 사정관 1명이 300명을 평가했다. 그러나 누가봐도 우수한 학생은 선발된다"고 했다.

◆입학사정관제, 연착륙하려면

입학사정관제는 수시를 강화하는 대학 입시의 변화뿐만 아니라 교육과정 개편과도 밀접한 관련성을 맺고 있다. 창의적 체험 활동의 도입을 골자로 한 2009 교육과정 개편이 그것. 학생이 자신이 정한 진로를 향해 어떤 활동과 준비를 했느냐가 창의적 체험 활동의 핵심인데, 앞으로는 이런 내용들이 학생부에 고스란히 기재된다. 임경식 사정관은 "대구시교육청 경우 내년에 각 학교마다 진로 담당 교사를 1명씩 배치한다. 지금까지 학교는 시험 준비만 잘 하면 됐지만, 이제부터는 학생부에 기재할 수 있는 내용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며 "창의체험 활동이 학생부를 대체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학생·학부모들은 입학사정관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남인국 사정관은 "입학사정관를 따로 준비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고, 그렇기 때문에 사교육에서는 답을 구하지 못한다"며 "일찍부터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키워주는 것이 가정과 학교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