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 정기창(57) 기획조정실장을 잘 아는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그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한다. '워크홀릭'(workholic·일 중독자). 그것도 지독한 '중환자'라고. 적당히 넘어가는 일이 없어 부하직원들로부터는 피곤한 상사로 낙인(?) 찍힌 지 오래다.
그는 가끔씩 산을 찾는 것 외에는 별다른 취미도 없다. 이유가 압권이다. "요즘은 저도 삶의 여유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합니다만 젊었을 때는 낚시나 바둑을 즐기시는 분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까운 시간을 왜 그렇게 보내는지... 자기 계발이나 정신적 풍요를 위해선 차라리 책 한 줄 읽는 게 낫다고 생각했거든요."
그가 처음부터 치열하게 산 것은 아니었다. 공부 꽤 한다는 소리는 어릴 때부터 들었지만 목표가 없었다. 방황은 대학을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칠 때까지 이어졌다. "찢어지게 어려웠던 형편 탓에 8남매 중에 넷째인 저 혼자만 고등교육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집안의 기대는 제게 오히려 큰 부담이었고, 죄책감만 갖고 살았습니다. 정말 어리석었죠."
젊은날의 철부지 짓은 '꿈'에서 깨어난 그를 매섭게 채찍질했다. 29세에 군 제대 후 고시 공부를 시작, 1983년 행시 27회에 합격한 뒤에는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았다고 했다. "공무원이 된 건 가난했지만 항상 주위를 먼저 배려했던 모친의 영향이 컸죠. 뭐 먹고 사나 고민하던 중에 나도 '남을 위해 살아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일에만 매달린 건 청춘을 헛되이 보낸 것에 대한 스스로의 반성이었습니다."
공직 생활이 벌써 30년에 가깝지만 그의 이력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다. 사무관 초기 대구시에서 5년간 근무한 것을 제외하면 국무총리실과 권익위의 전신인 부패방지위·국가청렴위에서만 근무했다. 예산을 다루거나 정책을 집행하는 실무부처 경험이 없는 것에 대해 아쉬움도 있을 법 하지만 그는 "다시 시작하더라도 전체 국정을 공정한 입장에서 볼 수 있는 조정자 역할이 좋다"고 했다.
"가장 보람을 느꼈던 일을 꼽는다면 청렴위 제도개선단장으로 일하면서 공공기관 법인카드를 '클린 카드'로 만든 것입니다. 사치향락업소에서는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업주들도 쉽게 알아보게 카드에 태극 문양을 넣었습니다. 선진국 중에 부패한 나라 없고, 비리 많은 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도 없습니다."
워크홀릭답게 인터뷰를 위해서 손수 메모를 준비해왔던 그는 인터뷰 후에도 애프터서비스를 잊지않고 이메일을 보내왔다. "공직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잠재적 능력이 무한하다는 것을 믿고 노력하는 만큼 발전할 수 있고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무한하다는 겁니다. 조직과 국가도 마찬가지여서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가능성을 믿고 지혜와 역량을 모아 나갈 때 세계일류 선진국가의 꿈이 현실화 될 수 있습니다."
고령 개진면이 고향인 그는 고령 직동초교·고령중을 졸업한 뒤 대구로 나와 대구고와 영남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영남대·경북대·뉴질랜드 와이카도대학에선 행정학·공공정책 석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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