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 120여 장을 갤러리 벽에 디스플레이하고 나니 밖이 어둑해져 있다. 갤러리 우측의 커피가게 바리스타가 하던 일을 멈추고 자신도 한때는 미대에 진학해 화가의 꿈을 펼쳐보려 했었노라며 유심히 스케치들을 바라본다.
그렇다, 본다는 것은 만남이자 앎이며 모든 정신 활동의 출발점이다. 그가 보고 있는 그림들은 지난여름부터 가을까지 우리 갤러리가 기획한 전시회의 2부 행사 에 출품된 가벼운 드로잉들이다.
전문 화가들 대신에 이러저러한 사정들로 화가가 될 수 없었던 사람이나 일반 시민, 청소년, 아이들이 그림과 갤러리에 친근감을 갖고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마련한 행사였다. 엄마와 아들이 각기 다른 표현 방식으로 표출해 낸 골목길 이미지가 나란히 붙어 있기도 하고 청라언덕 쪽 90계단은 특히 유치부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어, 직선과 동그라미로 표현된 아름다운 추상 이미지의 그림이 10여 장이나 쏟아져 나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림의 세계에서는 과학의 세계에서와 같은 눈부신 발전과 진보는 볼 수 없다. 모든 색깔과 선에는 각기 고유한 정신적 성격이 있어 원시인의 벽화에서도 우수한 회화의 재능이 발견되고 아이들의 그림이 전문가의 그림보다 탁월할 때도 많다.
그러나 최근 미디어 기술의 발달은 틀에 박힌 이미지를 쏟아내고 있고 우리의 눈을 오염시키는 온갖 시각적 자극만을 즐기도록 부추긴다. 또한 그것은 버튼만 누르면 특정 이미지를 전 세계로 날려 보내 유포시킬 수도 있다. 이렇게 도처에 범람하면서 상업적으로 변질된 이미지들은 사람들의 시각적 꿈과 진실을 망가뜨려 미궁 속을 헤매게 한다.
우리는 지금 본다는 것에, 앎에, 만남에, 이미지에 더 이상 신뢰감을 느끼지 못하는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 이러한 '이미지의 족적'을 다각도로 보여 준 기획 전시회가 있었다. 최근 폐막한 '2010 광주비엔날레전'이 그것이다.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에는 시각의 메커니즘과 끊임없이 변형되는 이미지의 족적을 추적할 뿐만 아니라, 시각적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순환되며 소비되는지를 질문하는 많은 작품들이 영상으로, 사진으로, 회화로, 설치작업으로 구성되어 전시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이미지가 종교와 정치 권력의 강력한 도구였음을 표현하고 시각예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사색적인 작품들도 많이 보였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생명이 없는 물질에서 생명을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선사시대 때부터 지금까지 무에서 유를 만드는, 다시 말하면 부재를 현실화하고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힘을 가진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창조해 왔다. 우리는 그것을 예술이라고 부르며, 그 이미지의 불가사의한 힘은 신성할 수도 있고 악마적일 수도 있었으며 때로 그것들을 교묘하게 조작함으로써 삶의 가치를 전도시키고 훼손하기도 했다. 성경에도 하느님의 형상을 이미지로 만들지 말라는 기록이 있지만, 이미지가 발휘하는 위력에 대해 종교가 그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예술을 엄격하게 통제해 온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이미지를 만들고 가르치는 예술 교육은 장차 미래 사회를 위한 가장 큰 투자가 될 것이라고 미래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사실 최근의 우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예술과 문화가 전문가들보다는 오히려 행정가들의 중요한 정책적 업무가 되어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문화 시장, 문화 대통령이라는 말은 이제 당연한 이슈가 되어있기도 하다. 그러나 빈번한 전시행정으로 산만하여 집중할 수 없고 소비가 횡행하는 사회에서 건강한 힘을 지닌 이미지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너도 나도 떠서 팔려야만 한다는, 작가들의 시장을 향해 치닫는 강한 욕망 또한 성찰 없이 수용되고 있는 요즘이 아니던가?
예술, 그 이미지의 순수한 힘은 예나 지금이나 창작하는 이의 정신적 깊이와 집중에서 나오고 사람들의 정서적 본능 또한 그 안에서만 감응하고 작동된다는 불변의 원칙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아야 할 시점이다.
백미혜(대구가톨릭대 CU갤러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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