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원태의 시와 함께] 황영감의 말뚝론 / 이대흠

생땅은 말이여 말하자면 처녀진디

그라고 쾅쾅 친다고 박히는 것이 아니여

힘대로 망치질하다간 되레 땅이 썽질 내부러

박혀도 금방 흐물흐물해져불제

박은 듯 안 박은 듯 망치를 살살 다뤄사제

실실 문지르대끼 땅을 달래감서 박어서

땅이 몸을 내주제

그라다 인자 조깐 들어갔다 싶으면

그때부텀 기운대로 치는 거여 아먼

그라고 박힌 말뚝이라사 썩을 때까장 안 뽑히제

그래사 말뚝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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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지인 생땅과 말뚝의 관계가 참 야릇하면서도 절묘합니다. 거기엔 무릇 '관계'란 것들의 핵심 혹은 본질이라 할 만한 것들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요컨대 생땅에 말뚝을 박을 때엔, "쾅쾅 친다고 박히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고, "박은 듯 안 박은 듯 망치를 살살 다뤄사제" 혹은 "실실 문지르대끼 땅을 달래감서 박어"야 한다는 게지요. 역발상의 지혜가 여기에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의 '설득실험' 사례들에서도 비슷한 관계가 나타납니다. 상대방을 잘 설득하려면 우선 적당한 '대화거리'가 필요합니다. 너무 가까우면 상대가 강요받는다는 느낌이 들고, 반대로 거리가 너무 멀리 떨어지면 대화의 집중력이 떨어지니 당연히 설득력도 떨어진다는 게지요.

이렇듯 '관계'들은 "힘대로 쾅쾅" 친다고 되는 게 결코 아닙니다. 적당한 '대화거리'와 함께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보다 먼저 필요한 거겠지요. 에로틱한 비유로 더욱 생생한 지혜의 '말뚝론'을 입심 좋게 설파해 주신 '황영감'님께 그저 빙긋이 웃음 지어 화답하고 싶어집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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