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탄소 거래소

위기가 인간에게 고통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사회 변화를 촉발한다는 사실은 꽤 흥미롭다. 1997년 IMF 외환위기는 우리나라에 벤처 산업 붐을 일으켰다. 너무 정책이 쏠리는 바람에 '벤처 거품'이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지만 어쨌든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 위기 극복 후 불어 닥친 바람이 '혁신'이었다.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중압감이 사회를 지배했다. 이노비즈(Inno-biz) 산업이 업계를 휩쓴 것은 2001년부터였다.

최근에는 지구 온난화와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녹색 산업'의 불을 지폈다. 벤처와 혁신은 우리나라가 세계 수준에 뒤처지면서 따라갔지만 녹색 산업만큼은 주도권을 쥐겠다는 것이 정부의 야심이다. MB 정권이 '저탄소 녹색 성장'을 정책의 근간으로 선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은 선진국들도 한국의 앞선 녹색 정책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렇듯 녹색은 우리 주변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산업 생산에서는 전국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는 대구지만 녹색 산업에서는 그래도 큰소리친다. 몇 년 전 '솔라 시티'를 선언하며 대부분의 공공 건물과 학교 지붕을 태양광 발전소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사업은 중도하차했고 그 사이 다른 도시에 주도권을 뺏기고 말았다. 그러나 매립 가스 분야에서는 여전히 선두 주자다. 방천리 쓰레기 매립장 덕분이다.

대구시는 방천리 쓰레기 매립지에서 나오는 매립 가스를 신재생 에너지로 이용했다. 매립 가스를 포집'정제하여 대부분을 지역난방공사 대구지사에 보일러 연료로 판매하고, 일부는 전기를 생산하여 자체 활용하고 있다. 이것이 유엔에서 추진하고 있는 청정개발체제(CDM) 사업에 딱 들어맞은 것이다. 그리고 온실가스 감축에 따른 탄소 배출권(CERs)을 발행받았다. 1차 모니터링 결과, CO₂ 22만5천t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를 판매하면 약 50억 원을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폐기물 분야 탄소 배출권을 대구시가 처음으로 발행받은 것이다.

그런데 엊그제 부산이 전국 탄소 배출권 거래소 유치 기반을 다지기 위해 국제포럼을 개최했다는 소식이다. 탄소 배출권 분야에서 목소리만 컸지 진짜 실익이 되는 전국거래소는 다른 곳으로 뺏기는 것은 아닌지, 대구시는 얼마나 대비를 하고 있는지 심히 우려된다.

윤주태(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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