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없으면 잇몸'이라는 속어를 치과의사가 제일 싫어한다고 한다. 언젠가 시골에 갔을 때 어떤 할머니가 틀니 없이 잇몸으로 고기도 씹는다고 자랑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하지만 이런 발상은 치아나 구강의 문제를 씹는 기능으로만 생각하는 데서 오는 오류가 아닐까? 적어도 치아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을 수 있다손 치더라도 발음도 잘 안 되고 얼굴 모습은 얼마나 합죽해지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입안의 염증이 전신질환에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들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치아가 많이 없는 사람이 치아가 많이 있는 사람보다 조기사망 위험이 높다는 보고도 있다. 이제 구강건강을 전신질환의 경고등으로까지 봐야 할 지경이다.
최근 뇌졸중 환자의 구강상태를 연구하고 있다. 뇌졸중 환자는 병이 걸리면 한동안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노출되었다가 어느 정도 회복한 상태에서 재활의학과에 입원하게 된다. 우리는 재활의학과에 입원한 환자를 치과에 내원시켜 구강상태를 검사하고 스케일링과 구강관리교육을 시키는데 우리가 놀랄 정도로 구강에 대한 관심이 적고, 환자들이 치과에 오는 자체를 귀찮아 한다.
물론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몸이 마비되는 경험을 한다면 치아나 구강문제는 뒷전이고 안 움직이는 팔, 다리 재활에 관심이 집중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몸의 재활이 생기는 동안 무참히 관심 밖으로 밀려난 구강건강은 상상 이상으로 훼손될 것이고, 구강건강에 관심을 갖게 될 때는 구강이 복원되는 노력과 경비가 많이 들므로 또다시 포기하게 될 것이다. 상황이 더 나빠지게 되면 자기 치아나 입을 통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단지 생존을 위한 영양공급에 의존하면서 살게 될 수도 있다.
한 예외인 환자가 있었다. 구강관리를 마치고 가면서 우리에게 "감사하다"고 한 몇 안 되는 환자 중의 한 분이셨다. 평소에 구강관리를 철저히 하시던 분인데 뇌졸중에 걸려서 오른쪽 마비가 와서 왼손으로 본인 나름대로 관리를 했지만 부족함을 느끼셨다고 한다. 우리가 스케일링과 칫솔질 교육을 통해 평소 관리가 안 되던 부위를 깨끗이 해 드리니까 정말 감격해 하시며 행복해했다.
평소에 칫솔질과 구강관리에 대한 관심이 있는 경우에만 어떤 중병이 걸려도 구강관리에 대한 욕구가 있는 것이고, 관심없이 칫솔질을 습관대로 해오던 경우에는 칫솔질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구강관리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따라서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대로 우리는 어려서부터 구강교육을 통해 칫솔질만이라도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 버릇으로 받아들인다면 건강한 장수를 위한 한 조건을 달성한 셈이 된 것이다.
영남대병원 치과 교수 이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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