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병원 신경외과 김성호(48) 교수는 간호사들 사이에서 '해결사'로 불린다. 그가 주로 치료하는 분야는 신경외과의 주류가 아니다. 하지만 뇌종양이나 뇌출혈 환자만 병원에 찾아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수많은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이 병원을 찾지만 누구를 만나 하소연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김 교수는 바로 이런 환자들을 상대한다. 파킨슨병, 손떨림증, 통증, 간질, 치매 등 다양한 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찾아온다. 그가 건넨 명함에도 '통증, 뇌성마비, 파킨슨병, 뇌손상, 말초신경질환'이라고 적혀 있다. 행여 누구를 찾아야 할지 몰라 당황하지 말라는 작지만 세심한 배려다.
◆기능적 뇌질환 수술의 선구자
뇌 수술은 신경외과에서도 가장 민감하고 어려운 수술이다.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 천공술에서 두개골 윗부분을 통째로 잘라내는 개두술을 거쳐 현재는 두개골의 최소 부위만 절개해 뇌 속의 병소를 정확하게 제거하는 수술로 발전했다. 핵심은 '뇌정위 수술'에 있다. 좌표가 새겨진 정위틀을 머리에 씌운 뒤 MRI로 문제 부위를 정확하게 찾아낸 뒤 뇌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 수술을 해내는 것. 뇌 속에 고인 핏물이나 고름은 쉽게 빼낼 수 있게 됐고, 종양 제거도 가능해졌다.
뇌에는 40~50여 종에 이르는 신경전달물질이 나온다. 이를 통해 기억·판단·행동 등을 수행하는데, 이런 물질에 이상이 생기면 우울증, 파킨슨병, 치매 등 뇌 질환을 일으킨다. 종양이나 출혈·경색·외상 등으로 생기는 질환과 달리 '기능성 신경질환'은 바로 이런 신경전달물질이 병적으로 변화한 것이다. 김 교수는 "예전에는 약물로만 치료했지만 차츰 한계에 부딪히게 됐다"며 "아울러 최신 수술법이 발달하면서 기능성 신경질환도 수술로 치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1996년부터 뇌정위 수술과 기능적 뇌질환 수술을 시작했다. 지역에서 불모지나 다름없던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꼽힌다. 특히 전기자극술을 이용한 통증 치료와 뇌성마비 강직과 관련한 수술에서는 전국 최고로 꼽힌다. 기능성 신경질환을 수술하는 국내 병원은 손에 꼽을 정도. 게다가 지방에서는 극히 드물다. 그는 영남대병원 척추센터와 뇌졸중센터를 주도한 인물이며, 신경과·재활의학과·정신과 등과 협진체계를 구축해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
◆치매도 수술로 치료 가능
특별한 이유도 없이 떨림증, 경직, 운동 느림증, 보행 및 균형장애를 일으키는 파킨슨병. 과거에는 뇌의 특정 부위를 파괴하는 수술이 이용됐다. 최근엔 뇌에 가느다란 전극을 삽입하고 가슴에 전파발생기를 넣은 뒤 리모컨으로 전파 크기를 조절해 질환을 치료하는 '뇌심부자극술'이 많이 이용된다. 지역에서는 김 교수가 2005년 5월 처음으로 이 수술을 해냈다.
그가 건넨 자료에는 '약으로 치료가 안 되는 통증을 간단한 수술로 치료한다!'고 적혀 있었다. 말초신경, 척수, 중추신경계에 외상이나 질환 때문에 생긴 '신경병증성 통증'을 수술로 치료한다는 것. 신경이 다친 부위는 건드리거나 옷깃만 스쳐도 아프고, 가만 두어도 전기로 쏘거나 칼로 베는 듯한 통증이 나타난다. 이런 통증은 마약성 진통제로도 조절이 어렵고, 항경련제나 항우울제가 도움이 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김 교수는 신경자극술로 통증 조절을 시도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척수자극술'을 통증 조절에 도입했고, 요실금 치료에 쓰이는 '천추신경자극술'로 골반통증 치료에 처음 적용했다. "약물에 비해 훨씬 좋은 결과를 낳기는 하지만 결코 100%는 아닙니다. 그만큼 통증 조절은 겸손하게 접근해야 하는 어려운 분야입니다."
그는 요즘 치매를 수술로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기에 바쁘다. 지난 8월 신경외과 의사 320여 명을 모아놓고 관련 강의도 했다. 물론 모든 치매가 수술 대상은 아니다. 흔히 알고 있는 알츠하이머는 외과적 치료에 대한 시험이 아직 진행 중이다. 다만 뇌수액, 혈액, 종양 등으로 뇌가 압력을 받아 발생하는 치매는 수술로 70%가량 호전을 볼 수 있다. 특히 '정상뇌압수두증'으로 발생하는 치매 증상의 경우, 그는 100례 이상 수술을 해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모든 치매를 수술로 치료한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치매를 불치병으로 여기고 방치하지 말고, 우선 뇌영상 촬영을 통해 반드시 원인을 진단해야 한다는 겁니다. 실제 치매증상 중 10~15%가량은 앞서 밝힌 수술법을 통해 치료가 가능합니다. 수술도 비교적 간단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고통을 덜어주는 의사
경기도 포천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1993년 초, 그는 부대 동료들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교통사고 현장을 지나게 됐다. 정황으로 짐작건대 길 가던 노인이 차에 치인 듯했다. 피해자는 숨을 쉬지 않았고 짚으로 만든 거적으로 덮어놓은 상황.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피해자의 맥을 짚어봤다. 희미하지만 맥박이 뛰고 있었다. 바로 응급처치에 들어갔다. 분초를 다투는 급박한 상황. 숨을 쉴 수 있도록 조치한 뒤 응급차를 불러 뇌수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옮겼다. 그 환자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만약 그가 현장을 지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운명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덕분이었다.
그는 영남대 수석 입학생이었다. 6년간 학비가 전액 면제였다. 나름대로 '잘나가는' 전공을 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통증'에 주목했다. "환자 중 70%는 아파서 병원에 옵니다. 그런데 예전만 해도 통증치료는 등한시했습니다. 아픔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약 먹으면 괜찮을 거예요' '다른 사람도 다 아파요'라고 소극적으로 대응했을 뿐이죠."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통증을 다스리기 위해 신경외과를 전공했고, 기능성 신경질환에 관심을 갖게 됐다. "스키를 타다가 다쳐서 하반신 마비가 온 30대 남자 환자가 있었습니다. 척추 교정수술을 받았는데 통증이 극심했습니다. 마비가 와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김 교수에게 수술을 받은 그 환자는 비록 마비는 풀리지 않았지만 통증이 가시면서 지금은 혼자서 운전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매일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나는 그는 걸어서 출퇴근을 한다. 새벽 운동을 거르는 날은 1년 365일 중 7일이 채 안 될 정도다. 철저한 자기관리는 연구 논문으로 열매를 맺는다. 미국 신경외과 전문지인 '뉴로서저리' 등 국내외 학술지에 뇌정위 수술과 관련해 13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가 공동 집필에 참여한 책도 6권에 이른다.
김수용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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