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차안에서 바깥풍경을 보니 가을이 깊어 만추로 향하고 있다. 갑자기 바람이 세차게 불어 가로수의 낙엽들이 비 오듯이 차창에 부딪힌다. 깊어가는 가을을 감상하기에는 마음이 편안하지는 않다.
다문화가정을 위한 지원 사업에서 구강검진을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머리 속에 맴도는 한마디가 있다. "그럼, 필요 없어요." 다문화가정의 한 여성이 구강검진을 하러왔다가 치과치료도 해 줄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치료는 안 되고 검진과 상담만 한다고 하니 필요 없다고 한다. 그리고 어눌한 한국말로 치료도 안 해주는 구강검진이 자신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반문한다.
그날 80여 명의 다문화가정을 검진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치과치료를 지원해주는 곳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마땅히 생각나는 곳이 없어 가까운 보건소에 문의해보라고 대답해 주었다. 다문화가정은 서로 다른 국적, 인종, 문화를 가진 남녀가 이룬 가정이나 그런 사람들이 포함된 가정을 의미한다. 대구경북지역에도 다문화가정이 약 5만 명에 이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는데 여성가족부의 통계를 살펴보니 대구경북지역의 결혼이민자와 혼인귀화자수가 약 1만4천 명 이상이었다. 같이 사는 가족들을 합한다면 상당한 수의 다문화가정이 우리들의 주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병원에도 이전보다 다문화가정들이 많이 치료하러 온다. 주로 외국인 신부들이 많은데 베트남이나 중국 분들이 많다. 최근에 남구보건소에게 시행한 다문화가정을 위한 무료보철사업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우리 병원에서 치료한 사람은 필리핀에서 시집온 여성이었다. 간단한 한국말도 하고 일상적인 대화도 나름 가능한 것 같았지만 치료하는 동안 의사소통으로 힘들었다.
치료내용을 설명하면 알았다고 대답은 "예"하였지만 정말로 이해했는지는 의문이었다. 보철치료가 모두 끝난 후 고맙다고 인사를 하면서 자신이 만든 빵을 선물로 주고 갔다. 퇴근 무렵에 보니 작은 선물상자가 있어 직원에게 누가 준 것이냐고 물어보니 원장님에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면서 필리핀 여성이 주고 갔다고 한다.
선물은 지갑이었는데 지갑을 열어보니 20페소짜리 필리핀 지폐가 들어 있었다. 우리나라 같이 필리핀에서도 지갑을 선물하면서 부자 되라는 의미로 지폐를 넣어주는지 아니면 한국풍습을 따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마음이 고맙게 느껴졌다.
외국인 근로자와는 달리 다문화가정은 이 땅에서 우리와 같이 살아가야하는 사람들이다. 현재 여러 방면에서 많은 지원들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치과치료에 대한 지원은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아니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아니하고 변함이 없는 상태를 중용이라 한다. 고등학교 때 중용을 중간정도라 생각했던 우리들에게 선생님은 '비겁과 만용에서 중용은 용기이고 태만과 망동에서 중용은 실천이다'라는 말이 깊어가는 가을에 더욱 생각나는 것은 왜 일까?
장성용 민들레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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