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행, 경북을 걷다] (47)영천…운주산승마자연휴양림

달빛·별빛 쏟아지는 황홀한 '달맞이길' 필마로 돌아드니…

달맞이길 = 운주산 승마장에서 휴양림으로 접어드는 곳에 마련된 달맞이길.
달맞이길 = 운주산 승마장에서 휴양림으로 접어드는 곳에 마련된 달맞이길.
승마장 전망대 = 운주상 승마장 뒤편에 마련된 전망대. 휴양림에서 달맞이길을 따라가면 만난다.
승마장 전망대 = 운주상 승마장 뒤편에 마련된 전망대. 휴양림에서 달맞이길을 따라가면 만난다.
운주산 승마장 = 누구나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승마를 즐길 수 있다.
운주산 승마장 = 누구나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승마를 즐길 수 있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길.' 영천시 임고면 황강리에 있는 '운주산승마자연휴양림'을 거닐어 본 느낌이다. 임고면에 있는 임고삼거리에서 포항시 기계면으로 가는 921번 지방도를 따라 2㎞쯤 가면 휴양림을 알리는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이곳 휴양림은 운주산이라는 이름을 땄지만 사실 동북쪽에 있는 산 정상까지는 직선거리로만 12㎞가량 더 가야한다. 그렇다고 해서 운주산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산자락이 서남으로 뻗으면서 영천호를 품고 있고, 그 아래 야트막이 내려앉은 산줄기가 바로 휴양림이다. 휴양림을 가운데 놓고 오른편에 능선을 따라 난 제법 널찍한 길이 '달맞이길'이고, 왼편 리기다소나무 숲을 거니는 길이 '솔바람길'이다. 휴양림은 '운주산 승마장'과도 바로 붙어있다.

말을 타고 승마장에서 출발하면 달맞이길을 따라 한바퀴 돈 뒤 휴양림 가운데로 돌아올 수 있다. 달맞이길에서 솔바람길을 따라 걸어가는 길은 4㎞ 남짓.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면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비록 이어져 있되 두 길이 전하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앞서 '뒷모습이 아름다운 길'은 리기다소나무 사이를 거니는 '솔바람길'이 되겠다. 리기다소나무는 삼엽송 또는 세잎소나무로도 불린다. 나무 줄기에서도 작은 가지가 나와 잎이 달리기 때문에 다른 소나무와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목재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지만 병충해에 강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강인한 나무다. 휴양림 면적은 무려 73㏊(21만9천 평)이다. 비록 간벌을 했지만 한 평당 한 그루씩 소나무가 자란다고 쳐도 얼추 20여만 그루가 자라는 셈이다.

동행 길을 걷던 날 마침 옅은 안개가 드리웠다. 빼곡한 솔숲 사이로 햇살이 비쳐들고, 삐죽이 솟은 소나무는 마치 볼품없는 제 몸매가 부끄러운 듯 아스라이 사라진다. 멋들어지게 휘어진 우리 소나무는 얼핏 용트림하는 듯도 보이고 갓을 쓴 선비의 고매한 춤사위를 흉내낸 듯도 보인다. 옆으로 스며드는 햇살에 쭉 뻗은 황금빛 몸매를 시원스레 내보이는 금강송은 기골이 장대한 장군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리기다소나무는 그렇지 못하다. 온갖 풍상을 한 몸에 겪은 듯 투박하고, 척박함을 이겨내다 보니 지친 듯도 보인다.

하지만 한두 그루 삐죽이 솟은 품새는 그럴지 몰라도 눈이 닿는 곳마다 뿌리를 내린 리기다솔숲은 가히 장관이다. 잠시 곧은 모양이 펼쳐지나 싶더니 어느새 굽이치는 길은 어떤가. 잠시 눈을 돌리면 스르르 사라지는 앞선 사람의 뒷모습이 솔숲 속에 눈물겹다. 내쳐 달리면 금세 따라잡겠지만 부질없다 싶어 그저 터벅걸음만 디뎌볼 뿐이다. 삶이 그렇고, 시간이 그렇지 아니한가. 자투리 시간을 내어 걸어 볼 요량이면 이곳 만한 숲길이 없다. 입장료도 없다. 솔바람길을 따라 한 바퀴 도는데 45분이면 충분하다.

탁 트인 시원함을 맛보고 싶다면 달맞이길이 좋다. 말을 타고 오갈 수 있는 길이기에 폭도 제법 넓다. 낮에 걷기에는 아깝다. 이름도 달맞이길이 아니던가. 어두워도 돌부리에 차일 염려가 없고, 하늘을 가리는 나무가 곁에 없으니 별도 쏟아질 터.

이곳 휴양림에서 하루 묵을 요량이면 잊지 말고 달맞이길 야행을 떠날 일이다. 야간 산행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한밤중에 숲길을 거닐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달맞이길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편하게 거닐 수 있다. 달빛이 쏟아지면 행복하고, 별빛이 환하면 즐거우리라.

임고땅에 오면 놓치기 아까운 볼거리도 많다. 앞서 임고삼거리 옆에 있는 '임고서원'이 그렇다. 고려 말 충신이자 유학자인 포은(圃隱) 정몽주(1337~1392)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곳. 포은 선생의 고향이 영천임을 모르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서원 뒤편에 포은 선생의 선친인 일성군의 묘가 있다. 포은은 19세에 부친을 여읜 뒤 3년상 여묘살이(부모의 묘소 근처에 여막을 짓고 살면서 묘소를 지키는 일)를 했는데, 동네 사람들은 지극한 효자가 태어났다고 해서 지명을 '도일리'(道日里)라고 불렀다. 지금은 양항리(良巷里)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포은 선생의 효성 덕분에 선량한 동네가 됐다고 해서 이렇게 붙여졌다고 추정된다.

'임고서원소장전적', 즉 임고서원에 보관된 책들은 1991년 보물 1109호로 지정됐다. 또 이곳에는 포은 선생의 영정 초상(보물 1110호)도 보관돼 있다. 조선 중기에 영의정을 지낸 학자 김육(金堉)이 그린 것으로 전해진다. 기록대로 조선 인조 7년(1629년)에 그려진 작품이라면 포은 선생 영정 중에는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작품이다.

서원에는 우뚝 솟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임고서원은 원래 지금 있는 양항리가 아닌 서쪽으로 10여 리 떨어진 고천리 부래산에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뒤 현 위치에 복원됐는데, 그때 은행나무를 옮겨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임고서원이 세워진 것이 명종 8년(1553년이니 대략 나무 나이는 450년을 헤아린다고 하겠다. 높이 30m의 거목으로 노랗게 물들 때 가히 장관이다.

봄이 오면 색다른 즐거움을 맞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앞서 임고삼거리에서 휴양림쪽으로 빠지는 대신 계속 직진하면 임고강변공원을 지나 영천호(영천댐)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은 '벚꽃 100리길'로 유명하다. 영천시는 댐 일주구간 5㎞에 2013년까지 자전거도로 및 산책로를 만들기로 했다. 호반길을 따라 드라이브를 즐기다가 왼편으로 길을 잡으면 보현산 자락을 만날 수 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 이곳을 달리면 마치 꿈결 속을 달리는 착각에 빠져든다. 지난겨울 동행 길 첫 코스로 보현산을 올랐었다. 지금도 정상에서 만난 눈꽃이 눈에 선하다. 사계절이 아름다운 영천땅은 하루가 다르게 새록새록 바뀌고 있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도움말=영천시 관광진흥담당 이원조, 산림녹지과 신규식 054)330-6287

전시장소 협찬=대백프라자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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