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규탄한다! 응징하라! 분쇄하자!"
26일 오후 3시 30분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신병 훈련소에서 나올법한 군가와 함께 붉은 글귀의 플래카드 수십 개가 펄럭이고 있었다.
'평화의 길 역행하는 북괴도발 응징하자', '북한의 전쟁놀음 민족공멸 초래한다' 등 강하고 낯선 단어들이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맹비난했다. 한국자유총연맹 대구지부 주관으로 '대한민국 국토수호 대구시민결의대회'가 열린 이곳에는 20여개 단체, 1천여 명의 시민들이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비판하며 함께 자리를 메웠다.
북한의 도발을 규탄하는 열기는 매서운 칼바람을 앞질렀다. 목도리와 두꺼운 점퍼로 무장한 시민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민가를 공격한 북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대구 동구 재향군인회 류기원(62) 회장은 "전시 상황에서도 민간인을 다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상식인데 북한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나라다"며 "민가에 무차별 포격을 가한 북 측에 그에 상응하는 대응을 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몸이 불편해도 국가적 위기 상황을 좌시할 수 없다며 광장으로 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대구 북구 지체장애인협회에서 온 정모(69·여) 씨는 "너무 억울해서 아픈 팔다리를 이끌고 이 자리에 나왔다. 북한은 구호품만 챙길줄 알지 언제 돌변해 우리를 또 공격할지 모른다"며 북한을 불신했다.
이날 공원에 모인 이들 중에서는 머리에 새하얗게 눈이 내린 노병들도 보였다. 6·25 때 경주 안강전투에서 싸웠다는 이석현(85) 씨는 구부정한 허리를 나무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었다. 이 씨의 절룩거리는 오른쪽 다리는 전쟁이 남기고 간 흔적이다. "김정일이 우리나라에 불장난을 하는 것을 보고 너무 분해 참을 수 없어 이 자리에 나왔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웠는데 또 이렇게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 것이냐"며 울분을 토했다.
공원을 지나가던 20대들도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갓 제대한 예비역과 징병 검사를 앞둔 이들 모두 북한의 이번 포격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 서해에서 해병으로 복무한 김문식(23) 씨는 "북한의 최근 도발을 생각하면 어르신들이 추운날 이렇게 나와서 집회를 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우리나라는 매번 당하고만 있으니 너무 답답하다"고 말했다. 임주형(19) 씨도 "나도 곧 징병 검사를 받고 군대에 가야한다. 최악의 상황에 전쟁이 터진다면 기꺼이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북한을 규탄하면서도 젊은 장병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전면전은 안 된다는 반응이었다. 정덕주 씨는 "북한이 80발을 쐈으면 우리는 배로 돌려줘야 한다. 하지만 더 많은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는 전쟁이 터질 만큼 사태가 악화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해병대 대구광역시연합 전우회 양내현 회장은 "백주 대낮에 민가를 공격하고 4명의 목숨을 앗아간 북한을 생각하면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른다"며 "북 측이 더 이상 도발을 하지 않도록 막아야 하지만 전면전을 치러 더 많은 장병이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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