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메디컬 프런티어] 경북대병원 내분비내과 이인규 교수

"식욕 억제-에너지 소비 촉진 '운동효과 신약' 개발 중"

경북대병원 내분비내과 이인규 교수는 당뇨 및 갑상선 질환 치료뿐 아니라 신약 개발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경북대병원 내분비내과 이인규 교수는 당뇨 및 갑상선 질환 치료뿐 아니라 신약 개발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경북대병원 내분비내과 이인규(53) 교수를 찾는 환자는 매주 200여 명. 대부분 환자가 2, 3개월마다 한 번씩 다시 찾아온다고 계산할 때 얼추 2천~3천 명을 이 교수가 돌보는 셈이다. 이처럼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이유는 이들 중 70~80%가 당뇨를 앓고 있기 때문. 이 교수는 이미 발병한 당뇨를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처음부터 당뇨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소식과 운동 대체 약물 개발

"혈중 포도당, 즉 혈당이 높다고 해서 당장 생명이 위독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관리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다양한 심혈관 질환 등 합병증으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당뇨는 사전 예방이 중요하고,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요하죠."

당뇨를 비롯한 성인병 예방의 첫걸음으로 의사들은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일 것, 바로 소식(小食)과 운동을 강조한다. 이렇게 하면 체내 에너지원인 ATP 생성을 촉진시키는 AMPK라는 일종의 효소를 활성화할 수 있다. 하지만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는다. 이 교수는 여기에 착안해 '적게 먹고도 포만감을 느끼고, 운동을 한 듯한 효과를 일으키는 물질은 없을까'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즉, AMPK를 활성화하는 물질을 찾아나선 것이다.

이 교수는 인체 안에서 소량 생산되는 지방산인 '알파리포산'에 주목했다. 기존에 당뇨병성 신경증 치료제로 쓰이는 물질이지만 이 교수를 비롯한 연구팀은 이 물질이 체내에서 식욕을 억제하고, 에너지 소비를 촉진해 체중 감소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을 처음 밝혀냈다. 알파리포산이 AMPK를 활성화해서 이른바 '운동모방효과' 즉, 운동을 한 듯한 효과를 나타냄을 밝혀낸 것.

"식욕억제와 에너지 소비를 촉진시키는 알파리포산은 새로운 비만치료제로 쓰일 수 있습니다. 기존 약제가 일년에 4㎏가량 체중감소 효과를 보인 데 비해 알파리포산 약물은 6개월에 3~4㎏ 감소효과를 보였습니다. 이 밖에 비알코올성 지방간 개선에도 효과가 있음이 밝혀졌고, 뱃살이 빠지고 노인성 난청 개선에도 도움을 줍니다. 노화방지 유전자도 활성화시켰습니다."

알파리포산 약제 개발은 아직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이 교수는 동맥경화로 좁아진 혈관을 넓혀주는 '풍선확장술' 시술을 받은 뒤 혈관이 다시 좁아지는 '혈관 재협착'을 막는 치료제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동맥경화 치료제의 경우, 전임상 시험은 마친 상태이며 1상 임상시험을 준비 중입니다. 생명과 직결된 약제인 만큼 철저한 연구와 준비가 필요합니다."

◆아버지를 보며 의학 연구의 꿈 키워

"아마 제가 의사가 되고, 또 당뇨에 매달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아버지 때문일 겁니다." 이 교수의 부친도 당뇨로 20여 년을 고생하다 결국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를 그토록 괴롭힌 당뇨를 정복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지만 사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서 보고 배운 많은 경험 덕분에 의사의 길을 택하게 됐다. 부친은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 교수였다. 화학자였고 식품중독, 공해 등에 대한 연구를 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대학 실험실을 자주 찾았다. 그에게 실험실은 신기한 것이 가득한 놀이터였다. 또래들은 접하기도 힘든 화학실험 도구를 만지고 사용하면서 연구실에서 실험에 몰두하는 꿈을 키웠다.

평범한 의사가 될 수도 있었지만 레지던트 시절 암으로 숨을 거둔 어머니 때문에 다시금 연구 의사의 꿈을 다지게 됐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화학요법도 받고, 여러 차례 수술도 받았습니다. 1차 수술 후 회복세를 보였는데 다시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1980년대 중반이었는데, 서울에서 방사선치료를 받은 뒤 돌아가셨죠. 지금 생각하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 치료였습니다."

그는 1988년과 1994년 두 차례 미국 하버드의대 조슬린 당뇨센터에서 연수하게 된다. 조슬린 당뇨센터는 당시는 물론 지금도 세계적인 당뇨치료 전문기관으로 명성이 높다. 그곳에서 첫해는 환자를 돌보고, 두번째 방문에선 당뇨로 인한 혈관합병증 연구에 참여했다. 이 교수가 20년 이상 관련 연구에 매달릴 수 있는 원동력도 미국 연수에서부터 시작된 셈이다.

◆당뇨도 관리하면 아무 문제 없어

"당뇨는 전 국민의 10%가 앓고 있는 병입니다. 50, 60대가 되면 15~18%가 당뇨를 갖고 있습니다.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방치하면 심장질환은 물론 뇌졸중으로 숨지거나 백내장 및 망막증 등 안과 질환으로 실명할 수도 있습니다. 신장이 제기능을 못하면 투석을 해야 하는데, 혈액투석 환자의 70~80%는 바로 당뇨 때문입니다."

당뇨를 앓던 한 50대 남성 환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새 신발을 신은 뒤 발에 작은 상처가 생겼는데 이를 방치해서 문제가 커졌습니다. 병원에 찾아왔을 때엔 이미 발목을 절단해야 할 정도로 심각했죠." 이 교수는 초기에 항생제를 집중 투약하고 상처 부위의 고름을 짜냈다. 다행히 환자의 상태는 좋아져서 발가락만 절단하는 선에서 치료를 마칠 수 있었다.

"한 번은 당뇨 때문에 망막증 수술을 받으러 온 환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부정맥이 심해진 겁니다. 수술은커녕 생명이 위독해졌습니다." 알고 보니 칼륨 결핍 때문에 생긴 증상이었다. "경험이 부족한 안과 의사는 눈만 들여다보고, 내과 의사는 혈당만 체크합니다. 그러다 보니 작은 부분에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죠." 칼륨 공급으로 증상은 호전됐고 수술도 성공했다.

소아나 청소년 당뇨환자도 늘고 있다. 문제는 성장기에 있는 환자들이 먹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가정 형편상 관리도 어렵다 보니 5년쯤 뒤에 심각한 합병증을 앓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매일 4차례 필요한 인슐린 주사도 제대로 맞지 않다 보니 병원 응급실에 혼수상태로 실려오는 경우도 있다. 젊은 나이에 실명하거나 신장까지 엉망이 된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모든 질병이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당뇨는 예방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일단 발병했더라도 식사와 운동을 통해 꾸준히 자기관리를 하면 합병증을 막으면서 건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김수용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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