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개천에서 용 만들기

덜 배우고 가진 것 없고 든든한 '빽'조차 없던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많은 사람들은 3당 합당 당시 정치적 보스인 김영삼 전 대통령을 따라가지 않은 그의 선택을 먼저 꼽는다. 보스의 결정을 거부한 선택이 당장은 그를 가시밭길로 내몬 독으로 다가왔지만 결국 약이 됐다고 한다. 평지 대신 오르막길을 마다하지 않은 그를 변화의 시대 국민들은 대통령으로 선택했다고 평가한다. 스스로의 권위와 소신을 지킨 결과 개천에서 용이 났다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보스나 소속 정당의 선택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당장 따돌림이 돌아오고 다음 선거에서 공천은 물 건너간다. 한 번 눈감고 참으면 될 일을 괜히 나서거나 반대하다가 찍힌 이가 실제로 적잖다. 다음 선거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조직과 실세의 주문을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반대를 하다가도 대부분 당의 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는 변명으로 돌아선다.

어제 국회에서 예산안이 처리됐다. 육박전이 벌어진 와중에 로이터통신은 본회의장 앞 통로를 막아놓은 의자들을 헤집고 넘어오는 장면을 찍은 사진을 '오늘의 사진'으로 뽑아 전 세계로 전송했다. 사회권을 넘겨받은 한나라당 정의화 국회부의장은 본회의 개의를 선언하며 '국민 여러분 면목 없습니다'라는 사과말을 했다. 본회의장 안팎에서 몸싸움을 벌이면서 욕설과 고함을 주고받은 추태가 그래도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원내대표의 '다 나와'라는 외침에 대부분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단상으로 올라가 야당의원을 끌어내렸다. 이후는 속전속결이었다. 어제의 결과를 두고 여의도에선 한나라당이 달라졌다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우유부단한 한나라당답지 않은 전투력을 보였다는 이유다.

국회를 출입하던 시절 몸싸움이 벌어진 뒤 의원들을 만나보면 누구 하나 잘못을 지적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들 했다. 국민들이 욕한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런데도 패싸움의 난장판은 되풀이된다. 국회의원들이 바보이기 때문일까.

어젯밤 한나라당 의원들은 승리의 축배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난투극 와중의 활약상을 자랑한 이도 없지 않을 터다. 어차피 치러야 할 일 후딱 잘 처리했다고 자평했을 수도 있다. 야당 의원 중에도 차라리 잘 끝났다고 여기는 이도 있을 수 있다. 어쨌든 국회의원들은 남는 장사를 했다고 여길 것이다. 난투극의 꼴불견을 국민들은 금방 잊어버릴 것이기에 여론은 큰 걱정거리가 아니라고 믿을 수도 있다.

대화와 타협 대신 패싸움으로 결말을 보는 국회를 놓고 전문가들은 공천제에서 잘못을 찾는다. 공천권을 장악한 조직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한다고 본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아무리 폐단을 지적해도 지금의 정당공천제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성장 환경에 따라 사는 방식도 달라진다. 어릴 적 형제들 중에서도 특별 대우를 받고 자란 아이는 커서도 특별 대우를 받으려 한다. 남의 말을 듣지 않고도 지낼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받들어 모시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국회의원 중에서도 그런 분들이 적잖다. 말로는 국민의 심부름꾼이라지만 그때뿐인 것은 그들의 습성 탓도 있다. 늘 대접받고 산 탓에 남을 존중할 줄 모르고 제 생각과 선택만이 옳다고 우긴다. 이런 사람에게 약속을 지키는 성실한 심부름꾼 역할을 맡기고서야 일이 잘될 턱이 없다.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려운 시대라고들 한다. 부익부 빈익빈, 악순환의 사회 구조 탓 때문이라고들 한다. 기득권자들이 거부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변화를 바란다면 스스로 변화의 길을 열어야 한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선거는 국민들이 가진 어마어마한 권리다. 국회의원은 특별히 잘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평균적인 상식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차라리 조금 부족한 사람이 더 낫다. 부리기 편한 사람을 선택해야 주인이 편하다. 주인의 눈치를 보지 않는 일꾼을 버릴 때가 됐다. 그래야 개천에서 용이 난다.

徐泳瓘(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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