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섬유 실세 '계피아' 아세요

섬유업계 기관·단체장, 계성고 출신 인사 많은 이유는

윤성광 한국직물조합연합회 회장, 이춘식 섬유개발연구원 원장, 우정구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원장, 전성기 한국염색기술연구소 소장, 조대연 한국섬유개발연구원 연구개발본부장, 박지주 경북천연염색산업연구원 원장….

이들은 대구경북은 물론 국내 섬유 업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기관·단체의 사령탑이다. 그런데 이들 모두 출신 고교가 같다. 바로 대구 계성고이다.

계성고 출신 섬유인은 기관·단체뿐만 아니라 잘나가는 기업CEO 등 섬유업계 전반에 널리 분포하고 있다. 지역 섬유업계에 유독 계성고 출신이 많은 까닭은 뭘까?

업계에 따르면 계성고의 지리적 위치가 1차적 요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1960년대 대구 섬유 부흥기부터 1970·80년대에 이르는 섬유 르네상스 때까지 대구염색산업단지 등 신천을 중심으로 섬유공장들이 늘어섰다. 생산된 섬유 제품은 한강 이남 최대 규모인 서문시장을 통해 전국으로 팔려나갔다.

자연히 섬유를 취급하는 상인들이 서문시장에 모여들었고 자식들을 시장 코앞에 있는 계성고에 진학시켰다. 서문시장 인근에서 사업을 한 원로 섬유인은 "점심때 불러서 밥도 먹이는 등 지척에서 자식들을 돌보기 위해 자녀를 계성고에 보냈다"고 전했다.

이는 계성고 출신이 섬유업계에 발을 들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공식이 통했다는 것. 현재 섬유회관이 계성고 앞에 설립된 것도 계성고 섬유인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해석을 내놓는 호사가들도 있다.

두 번째 요인으로는 계성고가 명문 사립이라는 점이 꼽혔다. 이 학교에는 집안이 대체로 여유롭고 창의성이 뛰어난 인재들이 많이 몰렸다는 것이다.

예술가를 다수 배출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업계 측 설명. 섬유는 곧 패션이고 패션은 예술이라는 것. 박목월(시인·23회), 김동리(소설가·21회), 김성도(아동문학가·21회), 박태준(작곡가·5회), 현제명(작곡가·8회) 선생, 조선 신극의 선구자인 홍해성(연극인·18회) 선생, '임자 없는 나룻배'의 감독인 이규환(영화인·9회) 선생 등 계성고 동문 중 한국 근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문인·예술인이 많다.

아담스관, 핸더슨관, 맥퍼슨관 등 현재에도 계성고 100년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아름다운 건물들 사이로 오가며 예술적 소양을 쌓고 창의성을 길렀다는 것이다.

한 섬유인은 "계성고가 1960년대 중반부터 60명의 특설반을 운영한 것과 창의성 위주의 교육을 해 온 점이 섬유인을 많이 배출한 주요 요인"이라며 "시장 성장세인데다 넓었던 섬유 시장을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계성고 출신이 노크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개척 정신이 강한 개신교 정신도 계성고인의 섬유업계 진출을 도왔다고 분석하고 있다.

부정적 측면을 말하는 이들도 있다. '모피아'처럼 대구 섬유 업계 전반에 계성고 장악력이 막강한 탓에 "계성고 출신이 물러나야 대구 섬유가 산다'는 목소리도 간혹 들리고 있다. 모피아((Mofia)는 재무부 출신 인사를 지칭하는 말로 재무부(MOF:Ministry of Finance, 현 기획재정부)와 마피아(Mafia)의 합성어이다. 이들이 정계, 금융계 등으로 진출해 산하 기관들을 장악, 거대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것을 빗대어 모피아란 표현이 생겨났다.

섬유업체 관계자는 "섬유기관 단체장, CEO 등 지역 섬유업계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모두 계성고 출신이다. 이들이 지역 섬유산업 발전에 기여한 점은 인정하지만, 동문끼리 서로 밀고 당겨주는 폐해로 뒷말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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