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독자 여러분 덕분입니다" 8년째 맞는 '사랑 릴레이'

힘들 때 잡아준 손길…혼자가 아님을 느꼈습니다

에반스 증후군과 골수 섬유증을 앓고 있는 조혜인 양.
에반스 증후군과 골수 섬유증을 앓고 있는 조혜인 양.
불편한 몸으로 세 조카를 키우는 서상수(가명) 씨 부부.
불편한 몸으로 세 조카를 키우는 서상수(가명) 씨 부부.
유방암과 투병 중인 김선희 씨.
유방암과 투병 중인 김선희 씨.

2010년은 어느해보다 다사다난했습니다. 지난 3월 백령도앞 바다에서 천안함이 침몰했고 11월에는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을 가했습니다. 불안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기부 문화도 위축됐습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비리로 '믿을만한 곳이 없다'며 기부의 손길을 끊는 이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경제 위기 때도 연말이 되면 따뜻한 기부 바람이 불었던 우리사회에 불신이 팽배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속에서도 매일신문 독자들은 '이웃사랑'에 더 큰 사랑과 신뢰를 보내주셨습니다. 지난해 7억1천71만원이던 성금이 올해 12월 29일 현재 8억4천827만6천원으로 작년보다 1억3천756만6천원이 증가했습니다.

올해로 만 8년째를 맞이한 이웃사랑은 지난 9월에 성금이 30억원을 돌파하는 '경사'를 맞기도 했습니다.

◆희망을 되찾은 사람들

24일 조혜인(5·12월 8일자 보도) 양은 9시간에 걸친 대수술대 올랐습니다. 에반스 증후군과 골수 섬유종으로 온 몸이 썩어가는 병에 걸린 혜인이는 피부를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27일 병원에서 만난 혜인이는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3주 전만 해도 "안녕하세요"라며 또랑또랑하게 인사했던 혜인이는 말없이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수술을 하며 피부가 죽은 왼발을 잘라내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아빠 조규성(38) 씨는 "혜인이가 수술을 받으면서 피를 많이 쏟아 힘들었을 것"이라며 "그래도 수술을 받고 나니 예전보다 피부 소독을 할 때 통증이 덜 한 것 같다"며 혜인이를 쓰다듬었습니다. 혜인이 가족은 엄청난 수술비 때문에 수술을 포기하고 있을 때 이웃사랑을 만났습니다. 엄마 이윤정(35) 씨가 "이번 겨울은 내 생애에서 가장 따뜻했던 겨울"이라고 했습니다.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을 앓는 추승주(가명·5·7월 21일자 보도) 군도 세포이식 수술을 했습니다. 승주는 10만 명 중에 한 명이 걸릴까 말까하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꼬마 환자입니다. 아버지 추석민(가명·32) 씨는 "독자들이 모아주신 성금이 큰 보탬이 됐다"며 "도움을 받았으니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병으로 시력까지 나빠져 알이 굵은 안경을 끼고 있던 승주는 씩씩하게 병원을 박차고 나갈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이부영(40·7월 28일자 보도) 씨도 골수 이식에 성공했습니다. 의료진은 "희귀유전자라 국내에서 맞는 골수를 찾기 힘들 것"이라고 했는데 기적적으로 골수 기증자를 찾았습니다. 23일 수술을 받은 뒤 부영 씨는 고향인 부산의 한 병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방학을 맞은 아들 정민섭(12) 군도 부산에 가 엄마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남편 정순모(42) 씨는 "돈이 있어도 자신에게 맞는 골수를 찾지 못해 생을 마감하는 이들도 있는데 제 아내는 최고로 축복받은 사람"이라며 "슬픔은 다 잊고 앞으로 새롭게 시작하겠다"고 기뻐했습니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

급성림프성백혈병 환자 류호은(38·9월 8일자 보도) 씨는 항암 치료를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호은 씨는 세 아들에게 아버지의 병이 학교에서 놀림거리가 될까봐 알리지 않았던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요즘 호은 씨 부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집이 있는 경남 거창과 대구 병원을 오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항암 치료 후유증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기도 했습니다. 호은 씨는 그와 골수가 맞는 국내 공여자를 찾았지만 공여자가 기증을 포기해 수술이 좌절되는 일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넓으니 자신에게 맞는 골수가 꼭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열심히 공여자를 찾고 있어요.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제게 독자 분들이 큰 힘을 보태주셨잖아요." 이런 상황에서도 호은 씨는 끝까지 웃음을 지었습니다.

쌍둥이 엄마 김선희(42·6월 16일자 보도) 씨는 남편을 하늘로 떠나 보내자마자 유방암을 얻었습니다. '하늘도 참 무심하다'며 눈물을 쏟고 있을 때 독자들이 그의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암과의 싸움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올해 여름 왼쪽 가슴 속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지만 암세포는 나머지 한쪽 가슴을 공격했습니다. 내년에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쌍둥이 남매가 엄마를 걱정할까봐 아픈 내색도 잘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엄마도 아빠처럼 멀리 가버릴까 걱정하는 것 같아요. 애들을 위해서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에요."

◆ '마음의 가족'을 얻었다.

일평생 혼자라 생각하며 살아왔던 이들은 '마음의 가족'을 얻었습니다. 오경택(30·9월 29일자) 씨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혼자 버텨온 15년, 외로움에 익숙하다 못해 무뎌진 사람, 선천성 척추병과 함께 묻혀버린 서른 살의 꿈, 몸을 가눌 수 없어 끼니를 거른다는 경택 씨의 사연을 읽은 독자들의 전화가 제작팀에게 걸려왔습니다.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니 너무 안타깝다", "내가 만든 반찬을 주고 싶은데 주소를 알려달라"는 내용의 전화였습니다. 엄마의 손맛이 무엇인지 몰랐던 경택 씨, 그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긴 것입니다.

혼자 사는 신현창(51·7월 14일자 보도) 씨에게 '이웃사랑'은 세상과 그를 이어주는 다리가 됐습니다. 신 씨는 '다발성 홍반성 구진'이란 병으로 걸을 수 없을 만큼 아픈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입니다. 고통의 원인도 모른채 6년간 침대에 누워지냈던 사람, 그의 사연이 기사화된 뒤 20년 전 몸담았던 직장의 동료들이 찾아왔습니다. 동네 사회복지사들도 수시로 찾아와 신 씨를 돌봐주었습니다. 세상과 벽을 쌓고 지냈던 신 씨는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되찾았고,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이들이 있어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새로운 삶 그리고 죽음

단칸방에서 벗어나 새 보금자리를 가꿔가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서상수(가명·57·11월 3일자 보도) 씨는 지금도 경주 안강읍에서 어린 조카 셋을 제 자식처럼 품어 키우고 있습니다. 서 씨와 부인 심명자(가명·49) 씨는 각각 지체장애 5급과 4급으로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입니다. 30㎡ 남짓한 단칸 방에서 소라(가명·16·여)와 소희(가명·13·여), 경제(가명·12) 삼남매와 함께 사는 서 씨는 성금을 받아 '삼남매 집짓기'에 들어갔습니다. 아이들에게 안방을 내주고 부엌에서 지냈던 서 씨 부부는 삼남매의 방 두 개를 만들었습니다. 벽돌을 쌓고, 도배를 하고 사랑을 듬뿍 담아 집을 지었습니다. 사춘기 소녀인 누나들이 옷을 갈아입을 때면 경제는 방에서 쫓겨나야 했는데 이제 그런 일이 없습니다. 서 씨는 "아이들 방을 볼 때마다 독자들의 사랑을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안타깝게 세상을 등진 이들도 있습니다. 간암 말기였던 이상식(47·6월 30일자 보도) 씨는 두 살배기 아들과 부인 강미혜(45) 씨를 남겨둔 채 지난 7월 이 땅에서 마지막 여름을 보냈습니다. 간경변을 앓았던 싱글맘 이경태(40·여·10월 13일자 보도) 씨는 이웃사랑에 사연이 나가고 3일 뒤 숨을 거뒀습니다. 이용민(가명·14) 군과 이혜주(가명·15·여) 양은 엄마가 떠난 뒤 경산에 있는 외삼촌 집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독자들이 보낸 성금은 희망이 됐고, 지금도 그들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습니다. '이웃사랑' 제작팀은 내년에도 소외된 이웃들에게 독자들의 정성을 전달하는 '사랑의 릴레이'를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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