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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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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마다 욕쟁이 할머니가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현상이다. 이들 할머니들은 대체로 식당을 하시는 분인데 대구는 물론이고 경주, 왜관 등지의 소위 '욕쟁이 할매'는 입이 거칠기로 유명하다. 도지사가 밥 먹으러 왔다가 대접받기는커녕 "니 밥 니가 알아서 ×먹어라"는 핀잔에 같이 간 사람들이 쩔쩔맸다는 일화가 한두 건이 아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런 욕(?)을 얻어먹고도 그 할매 집에 또 간다는 것이다. 역설 같지만 사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욕 속에 악의(惡意)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할매의 걸쭉한 욕지거리는 구수하게 입맛을 당긴다. 입으로는 욕을 하면서도 손으로는 반찬 한 움큼 더 얹어주는 인심에 손님들은 살살 녹는다.

세상 풍파를 한 바퀴 돌아 쓴맛 단맛 다 느낀 할매의 욕은 '삶의 양념'이다. 더구나 나이가 들면서 아드레날린이 풍부해진 할매의 남성적 일갈(一喝)은 듣는 이의 웃음을 자아낸다. 욕이 해학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심지어 욕을 듣지 않으면 오히려 밥맛이 없다는 별난 '마니아'들도 있다. 그런데 만약에 '욕쟁이 할배'가 장사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손님이 없을 것이다. 같은 욕이라도 할매가 하느냐, 할배가 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사뭇 달라지는 것은 삶의 묘한 이치다.

그렇다면 이런 욕이 청소년들 입에 달려 있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기도 싫은 가정이지만 지금 우리는 심각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최근 정부가 '청소년 언어 사용 실태'를 조사해 본 결과 이들의 73%가 매일 욕설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욕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5.4%에 불과하다고 하니 기가 막힌 통계가 아닐 수 없다. 청소년의 욕설은 기성세대의 잘못이다. 그들이 보고 배운 죄밖에 더 있겠는가.

요즘 한국 영화를 볼라치면 낯 뜨거운 욕설이 난무한다. 적당한 욕이 없으면 관객이 없다고 할 정도로 욕은 우리 일상생활에 흠뻑 젖어 있다. 남의 귀야 어떻든 내 편한 대로 말을 뱉어 버리는 천박한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예의만은 철저하게 지켰던 배달민족이 아닌가. 그 아름다운 금수(錦繡)강산이 금수(禽獸)강산으로 바뀌지 않을까 걱정이다. 아니 '그까짓 욕 좀 어때?'라는 무관심과 몰염치가 더 안타깝다. 말은 그 사람의 거울이다.

윤주태(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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