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가장 오래된 길' '영남의 제1관문이자 1천800여 년의 세월을 간직한 길' '고구려·신라·백제 등 삼국의 격전지였던 곳'…. 바로 죽령(竹嶺)이다.
옛 영화를 간직했던 죽령은 고속도로가 등장하면서 역사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 가는 '가지 않는 길'이었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옛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옛길에 관심을 보이면서 다시 부활을 꿈꾸고 있다.
◆영남 제1관문
죽령(해발 689m)은 경북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에서 충북 단양군 대강면을 넘어가는 아흔아홉 굽이의 험준한 고갯길이다. 1천800여 년 동안 문경새재와 영동 추풍령과 함께 교통의 중추적 역할을 해 왔다. 바람이 거세고 소낙비가 거세고 도둑이 거세다고 해서 '삼재령'이라고도 했고, 풍치가 아름답고 길손이 반갑고 주막 인심이 좋다고 해서 '삼풍'이라고도 불렸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동쪽으로는 영주·봉화가, 서쪽으로는 월악산·금수산이, 남쪽으로는 소백산 일대 첩첩산중이, 북쪽으로는 연화봉과 비로봉, 국망봉 등이 펼쳐진다.
신라 때 죽죽(竹竹)이란 사람이 닦았다고 해 죽령이란 이름을 얻었다는 이 길은 한때 고구려와 신라의 경계가 되기도 했고 옛 선비들의 과거길이기도 했으며 영남에서 기호로 통하는 중요한 관문이었다.
죽령고개는 예부터 한 국가나 한 지역의 경계를 이루는 중요한 장소이며 역사와 문화권을 다르게 발전시켜온 분기점이다. 또 사람이 서로 만나고 헤어질 때 정을 나누었던 장소요, 오고 가는 길손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땀을 씻고 쉬어가던 휴식공간이다.
영남의 수많은 선비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고개를 넘었고, 때로는 과거에 낙방해 쓰라린 가슴을 안고 다시 고개를 넘는 선비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문서를 한아름 안은 고을 관원, 어깨가 부서질 만큼 짐을 진 봇짐장수의 땀도 고개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죽령은 역사도 품고 있다. 죽령은 고구려, 신라, 백제 등 삼국의 격전지였다. 고구려의 전성기인 광개토대왕 때 죽령은 고구려의 국경선이었다. 이후 신라의 진흥왕은 백제와 연합해 거칠부 등으로 하여금 죽령 이북(지금의 충북)의 10여 고을을 빼앗도록 했고, 삼국통일 직전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이며 장군인 바보 온달이 아내 평강공주와 왕에게 신라에 빼앗긴 땅을 회복하지 않고는 돌아가지 않겠다며 다짐하고 출전해 전사한 장소가 바로 죽령이다. 반대로 죽령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계기로 신라의 김유신은 중원 땅(충주지방)에 삼국통일 기념탑을 세웠다고 한다. 고구려 군사들이 넘어 다녔고, 잃었던 땅을 되찾은 신라군과, 견훤을 물리친 고려의 왕건과, 나라를 몽땅 바친 경순왕도 눈물을 흘리며 죽령을 넘어 개성으로 갔다. 이 밖에 수많은 민초들이 죽령을 넘어 다녔다. 죽령은 역사의 산 증인인 셈이다. 오늘날의 죽령은 예전의 죽령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죽령 고갯길에 아스팔트가 포장되자 하루 1만여 대의 차량들과 소백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죽령을 관통하는 중앙고속도로 개통 이후 하루 수십 대의 차량이 오가는 초라한 도로로 전락했다. 죽령을 통과하는 중앙선 철도는 1942년 개통됐지만 예나 지금이나 하루에도 수십 차례씩 열차가 통과하고 있다.
죽령을 오르는 길엔 소백산이 품은 천년고찰 희방사와 희방폭포, 청령대가 있다. 희방사는 643년 두운 조사가 소백산 남쪽 기슭 해발 850m에 창건한 사찰이다. 절 입구에는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연림이 빽빽이 우거져 있으며, 절 바로 밑에 내륙지방 최대 폭포인 높이 28m의 희방폭포가 있다. 폭포가 떨어지는 계곡에는 커다란 바위덩어리와 숲이 펼쳐진다. 경내에 희방사 동종과 월인석보 책판을 보존하고 있다. 죽령을 넘나들던 과객들과 상인들은 한번쯤 이곳에 들러 저마다의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금창헌 소수박물관장은 "죽령은 조선 중종 때의 명신인 농암 이현보, 퇴계 이황, 신재 주세붕 등과 얽힌 옛 이야기도 많다"며 "소백산과 죽령을 영주를 대표하는 역사문화 자산으로 보존·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앙고속도로 개통…한적한 길
하지만 2001년 12월 국내 최장 길이를 자랑하는 중앙고속도로 죽령터널(4.6㎞)이 뚫리면서 죽령은 그 옛날처럼 다시 한적한 길이 되고 말았다.
지나가는 객들이 뜸해지면서 죽령고개를 사이에 두고 충북 단양군과 경북 영주시가 경쟁적으로 설치한 단양휴게소와 죽령주막도 수년 전의 영화를 뒤로한 채 빛이 바랬다. 단양휴게소는 아예 민박촌으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고 죽령주막은 어쩌다 찾는 길손들과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등산객들의 '오아시스'로 명맥을 겨우 이어오고 있다.
10여 년째 죽령주막을 운영해오고 있는 안정자(56·여) 씨는 "죽령터널이 개통된 뒤 이곳을 지나는 차량들과 길손은 셀 수 있을 정도"라며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지만 1년 중 절반은 문을 닫아 놓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한때 수배자 검거에서 경상북도 내 최고를 자랑하며 6, 7명의 경찰과 전·의경이 근무하던 소백산국립공원 죽령검문소가 2008년 건물을 철거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소백산국립공원사무소 한 관계자는 "공원 내 미관 및 경관을 위해 죽령검문소를 철거하고 쉼터를 조성했다"고 말했다.
죽령검문소는 1984년 2층 규모로 조성돼 죽령의 관문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2001년 12월 국내 최장길이를 자랑하는 죽령터널이 뚫리면서 5번 국도 운행차량이 감소, 죽령 길은 옛 영화를 뒤로하게 됐고 관문을 지키던 죽령검문소마저 폐쇄돼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길손들의 쉼터인 정자 하나 만이 남아 있다.
등산객 이희원(57) 씨는 "예전에는 죽령검문소를 통과할 때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죄인처럼 가슴이 두근거릴 때도 있었다"며 "숱한 애환과 사연을 간직한 검문소가 사라져 이 길을 지날 때면 가끔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검문소에서 100m쯤 떨어진 시설지구에 들어선 여관과 상가, 간이휴게소들도 마찬가지. 터널 개통 이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경제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예전 같으면 죽령길 차량운전은 꿈도 못 꾸었을 초보운전자들이 주행연습에 나서는 진풍경은 쇠락한 죽령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하다.
◆옛길 복원 나서
하지만 영주시가 최근 역사와 전설이 살아 숨 쉬는 옛길 복원사업을 추진해 옛 영화를 되찾을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말 문경새재 옛길, 문경의 토천 옛길, 강원도 양양과 홍천을 이었던 구룡령 옛길과 함께 역사성과 예술성, 경관이 뛰어난 것으로 인정받아 명승 30호로 지정됐다.
죽령옛길은 중앙선 희방사역을 출발, 죽령고개 마루까지 2.4㎞ 구간이다. 먼발치서 바라볼 때의 길과 실제로 걸어볼 때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풍기읍내에서 바라본 죽령은 엄두조차 내기 어려울 정도로 험준한 준령이지만 실제로 걸어보면 백두대간을 넘어가는 고갯길이라는 사실조차 잊을 만큼 편안하고 경사가 완만하다. 숲은 낙엽송과 인공림, 참나무 등이 빼곡히 들어선 천연림이다. 하늘을 찌를 듯이 쭉쭉 뻗은 낙엽송이 보기에도 시원스럽다.
죽령을 오르는 길 중간지점에 돌무지가 가득하다. 옛 주막터다. 숲 속의 일부가 된 폐가터이지만 아마 예전에는 한양(지금이 서울)과 경상도 지역을 오고 가는 나그네들이 지친 심신을 달래며 서로 대화를 나누던 쉼터였을 것이다.
이곳을 지나 조금만 가면 죽령 고개 정상으로 올라가는 제법 경사진 고개가 나온다. 바로 이곳을 오르면 2.4㎞ 구간의 죽령 옛길이 끝나게 된다.
죽령옛길은 퇴계 이황과 온계 이해 형제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퇴계 선생이 풍기군수로 있을 무렵, 넷째 형인 온계는 충청감사였다. 온계가 고향인 예안을 다녀가는 길에 풍기 땅을 지날 때마다 퇴계는 죽령까지 배웅나왔고 퇴계와 온계는 '잔운대·촉령대'라는 바위에 앉아서 형제간의 남다른 우애와 석별의 정을 나눴다고 한다. 현재 죽령고갯길에는 이들 형제의 우애를 기리는 촉령대 비가 세워져 있다.
죽령옛길은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과 눈길을 붙잡을 만큼 빼어난 절경은 없다. 또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할 정도로 험준한 구간도 없다. 영주 사람들은 이웃에 마실 가듯 가볍게 죽령옛길을 오르내리곤 한다.
수시로 오르내려도 날마다 먹는 밥처럼 물리지 않고, 듬직한 소백산처럼 푸근한 느낌을 주는 길이다. 해발 689m의 죽령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길손들과 차량의 안전을 기원하는 장승과 '죽령주막'이라는 초가 두 채가 길손들을 맞는다. 따뜻한 국밥 한 그릇으로 몸을 녹여주고, 고소한 도토리묵과 파전을 안주 삼아 곁들이는 막걸리 한잔이야말로 죽령옛길의 여정을 더욱 풍요롭게 해줘 쌓인 피로도 풀 수 있다. 죽령 정상에 도착하면 경북과 충북의 화합을 다지는 상징물인 장승 구경도 해볼 만하다. 매년 11월쯤에는 죽령장승을 다시 세우는 장승제도 열린다.
시는 올해부터 죽령옛길 복원사업을 추진한다. 사업비 50억원을 들여 캠핑카 150대가 주차가능한 오토캠핑장 2만㎡에 옛길 체험관과 특산물판매장, 관리사, 취사장, 화장실, 샤워장을 완비할 계획이다. 또 죽령옛길 중간지점에 위치한 옛 주막터(7천276㎡)에 조선시대 사회 생활상의 일면을 재현할 수 있는 죽령 주막도 복원할 계획이다. 퇴계선생 유정비 정비와 죽죽사당 건립도 추진한다.
송준태(50) 영주시 학예사는 "죽령옛길 정비사업이 끝나면 가족단위 역사문화탐방객과 웰빙 체험 관광객이 증가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영주·마경대기자 kdm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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