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법원에 설치된 스크린 도어는 판사실 무단 출입을 통제하는 장치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판사실에 사건 관련자들이 들고나는 것을 막자는 취지였다. 사건 당사자나 변호사 검사와의 부적절한 만남이 불러올 오해를 줄이기 위한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스크린 도어 설치 이후 판사실 출입은 여간 까다롭지 않고 그 덕에 판사들은 재판 연구에 전념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법조계 주변에선 스크린 도어 설치 이후 전관 변호사들의 수임료가 더 올랐다고 비꼰다.
이유인즉 판사와 인연이 없는 변호사와 달리 전관 변호사들은 법원의 판사실 아닌 곳에서도 어렵잖게 만날 수 있는 덕택이었다. 오랜 기간 같이 근무한 사이라면 전화로도 얼마든지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 사정이 급한 사건 당사자들이 법정 이외에선 판사와 접촉하지 못하는 변호사를 찾아갈 리 없다. 재판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내세운 규제가 되레 부담만 더 키운 것이라고 지적한다.
며칠 전 법원행정처가 펴낸 '법관 윤리'에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판사들의 행동 지침이 제시돼 있다. 친구 변호사가 개업했을 때 소속과 직위가 적힌 화환을 보내지 말라는 지침에서부터 경조사 부조금은 5만 원 이내로 제한했다. 동료 판사이던 변호사가 변호인으로 출석할 경우 사건을 다른 재판부에 넘겨야 한다는 지침도 있고 법관 지위를 개인적 이익을 위해 사용하면 부적절하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법관 윤리 책자는 352쪽에 달한다고 한다. 법관 윤리 강령이 담고 있는 선언적 규정들에 국내외 사례와 해설을 덧붙인 때문이다. 그러나 법관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는 그렇게 어렵고 복잡하지 않다. 까다롭고 민감한 사건의 잘잘못과 옳고 그름을 가리는 법관이라면 모를 일들이 아니다. 개업 화환을 보고 판사와 변호사의 친소 관계를 알 정도로 사회는 어수룩하지 않다. 어느 조직에서나 누가 누구와 친하다는 것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재판 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은 중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일이라고 소소한 일까지 규정을 정하면 불필요한 억측과 부작용만 낳는다. 사람 살아가는 이치는 비슷하다. 글 모르고, 힘들고 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자기 위치에 걸맞은 행동이 무엇인지 정도는 안다. 최고의 수재들이 꼼꼼히 따져봐야만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 판사들의 수준이 윤리 강령을 보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일까.
서영관 논설실장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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