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증오와 관용

한반도 관련 망언으로 유명한 일본의 극우 인사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가 일본 대지진에 대해 '천벌'을 언급했다가 하루 만에 발언을 철회하고 사죄했다. "피해자에게는 불쌍한 일이지만 쓰나미가 일본의 탐욕을 한번 쓸고 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불가항력의 자연재해를 천벌과 연계시키는 심리는 동서고금 어디에나 존재한다. 하지만 국난으로 표현될 정도로 엄청난 재해를 당한 상황에서 주목받는 정치인이 막말을 했다는 점에서 그 파장은 컸다.

사회학자 히로이 오사무(廣井脩)는 '재해와 일본인-거대 지진의 사회심리'(1986년'시사통신사)라는 책에서 일본인의 재해관에는 천견론(天譴論), 운명론, 정신론 등 세 가지 형태가 있다고 주장했다. '재해는 하늘이 인간에게 내린 벌이며 타락한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하늘이 재해를 일으킨다'는 것이 천견론이다. 이를 믿는 심리가 일본인에게 잠재해 있다는 것이다. 학설에 불과하지만 일본인뿐 아니라 이성과 합리주의에 익숙한 모든 현대인이 이런 심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일본인에게 이런 의식과 행동의 특징이 있다 할지라도 고통을 겪고 있는 자국민을 향해 대놓고 말하는 것은 미움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일이다.

대지진을 놓고 한'일 네티즌이 벌이는 악플 또한 이시하라 망언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일본 지진은 하나님의 경고'라거나 '지진을 틈타 한국'중국인들이 불온한 행동을 벌일지 모른다'며 집단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일은 철부지 짓이고 미움이 또 다른 미움을 낳는 꼴이다.

기원전 전국시대 때 위나라 문후(文候)가 현자 이극(李克)에게 남의 미움을 받지 않는 방법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극은 "귀한 자가 천한 사람에게 자신을 낮추면 백성이 미워하지 않고, 부자가 가난한 자에게 나눠 주면 빈궁한 선비들도 그를 미워하지 않으며 지혜로운 자가 어리석은 이를 가르치면 사리에 어두운 이들도 미워하지 않는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예(禮)다.

남을 미워하기에 앞서 자신이 미움받지 않으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재난의 고통을 외면하고 과거부터 들추며 증오의 이데올로기를 확대재생산하는 것은 미움을 부르는 것이다. 굴곡 진 역사가 있다 하더라도 곤궁에 빠진 이웃을 기꺼이 돕는 것이 박애이자 진정한 '인류 정신의 진보'다. 밉지만 어려운 처지의 이웃에게 손을 내미는 관용의 힘을 보여줄 때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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